영화 오펜하이머(Oppenheimer)
오펜하이머는 2023년 8월 15일 개봉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으로 미국 핵 개발 역사에 대한 전기 영화이다. 카이 버드와 마틴 J. 셰르윈이 2005년에 저술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바탕으로, 영화는 미국 이론 물리학자인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을 다룬다.
오펜하이머 개봉일: 2023년 8월 15일
등급: 15세 관람가
장르: 스릴러 드라마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국가: 미국, 영국
러닝타임: 180분
배급사: 유니버설 픽쳐스
평점: 로튼토마토 8.60 IMDb 8.70
영화 오펜하이머 등장인물
J. 로버트 오펜하이머 역: 킬리언 머피
진 태트록 역: 플로렌스 퓨
키티 오펜하이머 역: 에밀리 블런트
레슬리 그로브스 역: 맷 데이먼
루이스 스트로스 역: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어니스트 로렌스 역: 조쉬 하트넷
보리스 패쉬 역: 케이시 애플렉
데이비드 힐 역: 라미 말렉
닐스 보어 역: 케네스 브래너
케네스 니콜스 역: 데인 드한
알버트 아인슈타인 역: 톰 콘티
재키 오펜하이머 역: 에마 듀몬트
영화 오펜하이머 줄거리 결말 해석 리뷰 보러 가기
*영화 개봉까지 2주 정도 앞두고 있다.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지도 모르는 핵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천재 과학자 '오펜하이머'의 전기 영화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므로, 그의 생애와 주요 사건들, 그리고 오펜하이머와 등장인물들의 관계도를 정리해 보았다.
오펜하이머 등장인물 관계도 (실화 고증)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
J.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1904년 4월 22일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이며,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맨해튼 프로젝트의 로스앨라모스 연구소의 소장이었다. 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린다.
지적 호기심과 교육에 높은 관심을 가진 오펜하이머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언어를 습득하며 고전 문학과 철학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물리학 학사 학위를 받은 후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양자역학을 공부하였으며, 특히 통계적 물리학을 연구하였다.
1931년 오펜하이머는 미국으로 돌아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그 후 시카고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이론물리학과 핵물리학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를 진행하였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과 함께 핵분열의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레오 시라드(Leo Szilard)는 원자폭탄 개발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이로 인해 오펜하이머는 미국 정부의 원자력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1942년부턴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채용되었고, 1943년 미국의 로스앨러모스 연방 연구소(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에서 최초의 핵무기 개발과 제조를 총괄했다. 이 과정에서 원자폭탄인 '리틀 보이(Little Boy)'와 '팻 맨(Fat Man)'이 개발되었으며, 1945년 8월 6일과 9일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어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키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원자폭탄 투하 이후, 오펜하이머는 핵무기의 파괴적인 힘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물리학자로서의 업적과 함께 인류의 운명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하며, 핵무기의 확산을 제한하고 국제적 핵무기 감시와 통제 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953년, 오펜하이머는 레드 스케어(Red Scare)에 의한 연방 청문회를 받게 된다. 공산주의자와의 연결과 정치적인 의문점으로 인해 보안 검증을 거부당하게 되고, 1954년에는 미국 물리학회에서 추방된다.
*(Red Scare- 사회나 국가에 의한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또는 좌파 이데올로기의 잠재적 부상에 대한 광범위한 공포를 조장하는 것)
그 이후에도 학문적으로 활동을 이어갔으며, 국제적 핵무기 감시와 핵폭발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했다. 1963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와 미국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대통령의 협력으로 부분적 핵 테스트 금지 조약(Partial Nuclear Test Ban Treaty)이 체결되는데 큰 기여를 한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1967년 2월 18일 62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의 생애와 핵무기 개발과정에서의 역할, 그리고 이후의 국제적 핵무기 감시 및 규제 노력은 물론, 개인적인 심적 고통과 국가의 운명에 대한 심오한 고민은 인류의 역사상 큰 흔적을 남겼다.
캐서린'키티' 오펜하이머(에밀리 블런트) -오펜하이머의 부인
키티는 독일계 미국인으로 생물학자이자 식물학자이며 전 미국 공산당원이었다. 그녀는 오펜하이머와 결혼하기 전 램지어, 조이 달렛(사실혼), 리처드 스튜어트 해리슨과 결혼했었다.
그녀가 오펜하이머를 만난 것은 1939년 8월이며, 오펜하이머와 만날 당시 그녀는 해리슨과 이혼하기 전이었다. 오펜하이머 역시 오랜 여자친구 진 태트록과 헤어진 이후 여러 여성들과 데이트를 즐겼고, 그들 중 일부는 키티 해리슨처럼 유부녀였다. 키티는 크리스마스 날, 오펜하이머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남편 없이 버클리로 넘어가서 그와 만남을 가진다.
오펜하이머는 해리슨과 키티를 그의 뉴멕시코 목장으로 초대한다. 해리슨은 그의 연구에 전념하고 있어서 초대를 거절하지만, 키티는 수락한다. 그곳에서 오펜하이머의 형제 프랭크 오펜하이머와 프랭크의 아내 재키와 만남을 가진다. 키티는 오펜하이머와 외도를 이어가던 중 임신하게 되고 1940년 9월 이 소식을 남편 해리슨에게 전달한다. 이혼은 1940년 11월 1일에 확정되었고, 키티는 다음날 버지니아 시티에서 오펜하이머와 결혼한다.
진 태트록(플로렌스 퓨)- 오펜하이머 연인
진 태트록은 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공산당의 당원이었고 당의 간행물 기자이며 작가이다. 오펜하이머가 버클리의 물리학 교수였던 1936년, 대학원생이던 그녀는 그와의 만남을 시작한다. 그들은 스페인 공화당원들을 위한 모금 행사를 열었을 때 공산당원이었던 메리엘렌 워시번을 통해 만났다. 두 사람은 열정적인 관계를 맺었으며, 오펜하이머는 그녀에게 두 번 청혼했지만 거절당한다. 또한 그녀는 오펜하이머를 급진적인 정치와 공산당 관련 그룹에 연루되거나 동조하는 사람들에게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오펜하이머가 키티 해리슨과 결혼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계속 만나곤 했다. 그들은 1941년 새해를 함께 보내기도 하고, 한 번은 샌프란시스코의 마크 홉킨스 호텔에서 만남을 가졌다.
태트록의 친구들과 오펜하이머의 연관성은 1954년 보안 청문회에서 그에게 불리한 증거로 사용되었다. 1954년 3월 4일 자 미국 원자력 위원회의 케네스 D. 니콜스 소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펜하이머는 그들의 연관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936년 봄, 저는 대학의 저명한 영어 교수의 딸인 진 태트록을 친구들로부터 소개받았습니다. 가을에는 그녀와 약혼한 것처럼 친밀해지며 교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두 차례 결혼을 생각할 만큼 서로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1939년부터 1944년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저는 그녀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공산당 당원 자격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녀의 공산당 가입은 불안정하고 단기간의 일이었으며,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을 제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그녀의 관심사가 정말로 정치적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녀는 이 나라와 국민과 삶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많은 공산주의자들의 친구였으며, 그중 일부와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진 태트록 때문에 좌파 친구들을 사귀거나, 스페인의 로열 리스트 사건, 이주 노동자들의 조직처럼 지금까지 저와 너무 동떨어져 보였을 대의들에 대해 동정심을 느꼈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사안에 기여하는 원인들 중 일부를 언급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동료의식을 좋아했고, 그 당시에는 제가 제 시대와 나라의 일부가 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레슬리 그로브스(맷 데이먼)
그로브스는 육군 장군이며, 기술적이고 조직적인 면에서 프로젝트를 관리하여 원자폭탄의 개발과 생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 조달과 기술적인 지원 등을 조직하며, 원자폭탄 제조에 필요한 시설과 인력을 마련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루이스 스트로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미국 원자력 위원회(AEC) 의장
미국의 비즈니스맨이자 정치인으로서, 핵무기 개발과 사용에 관여했다. 스트로스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한 멤버로서 핵무기 개발에 기여하였고, 이후에 미국 핵무기 발전을 주도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원자력 규제와 핵무기 개발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해 오펜하이머와 갈등을 겪기도 했다.
어니스트 로렌스(조쉬 하트넷) 1939년 노벨 물리학상
어니스트 로렌스는 미국의 물리학자이며, 사이클로트론(Cyclotron)을 발명한 인물로서 중성자 생성에도 기여한 핵물리학자이다. 로렌스는 원자로 설계와 중성자 측정 등의 분야에서 맨해튼 프로젝트에 지원을 제공했다.
닐스 보어(케네스 브래너) 1922년 노벨 물리학상
닐스 보어는 덴마크 출신의 물리학자로서, 양자역학과 원자 구조 이론에 대한 기본 원리를 개발한 인물이다. 오펜하이머와는 핵분열과 핵물리학 연구에 관심을 공유하면서 많은 논의를 나누기도 했다. 보어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핵물리학 분야의 중요한 인물로서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쳤다.
보리스 파시(케이시 애플렉)
보리스 파시는 미국 육군 정보 장교로서 보안과 스파이 관련된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오펜하이머를 포함한 직원들을 심문했고, '아직도 공산당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라고 결론지었다. 1946년에는 일본에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밑에서 복무했다.
데이비드 L. 힐(라미 말렉)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미국의 핵물리학자이자 미국 과학자 연맹의 회장이다. 그는 1959년 루이스 스트로스가 미국 상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반대하는 증언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케네스 니콜스(데인 드한) 미 육군 소령
미 육군 장교이자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토목 기사이다. 니콜스는 전쟁 후 1947년 원자력 위원회에 인수될 때까지 맨해튼 프로젝트에 남아 있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톰 콘티)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독일 출신의 물리학자로서, 상대성 이론과 광자 이론에 대한 기본 원리를 발견한 과학자이다. 원자폭탄 개발에는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1939년에 레오 시라드와 함께 핵분열이 핵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미국 정부에 알려주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시작과 핵무기 개발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에드워드 텔러(베니 사프디)
에드워드 텔러는 핵물리학자로서 맨해튼 프로젝트 핵무기 개발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텔러는 핵폭탄인 "리틀 보이(Little Boy)"와 "팻 맨(Fat Man)"의 설계와 개발에 기여하였으며, 특히 수소폭탄 개발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보안 청문회에서 부정적인 증언을 한 후, 과학계는 텔러를 배척한다.
필립 모리슨(해리슨 길버트슨)
필립 모리슨은 미국의 물리학자로서, 맨해튼 프로젝트의 일원으로 핵무기 개발에 참여했다. 그는 원자폭탄 개발과 투하 이후, 핵폭탄과 핵에너지에 대한 공론화에 관여했다. 특히 핵전쟁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염려를 표하면서도, 원자력 기술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스 베테(구스타프 스카스가드)
독일계 미국인 물리학자로서 핵물리학과 천체물리학 분야에서 활동했다. 오펜하이머와 함께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핵무기 개발에 참여하였으며, 그는 특히 수소폭탄인 "하이드로젠 폭탄"의 개발을 주도하였다. 베테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에 큰 기여를 하였고, 나중에는 stellar nucleosynthesis에 대한 연구로 노벨 물리학 상을 수상하게 된다.
리처드 파인먼(잭 퀘이드)
리처드 파인먼은 오펜하이머와 함께 물리학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 물리학자이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일원으로서 원자폭탄의 개발에 참여했다. 그는 로스앨러모스 연방 연구소에서 물리학 연구를 수행하고, 핵분열과 핵무기 개발에 기여했다. 나중에는 양자전기역학과 첨단 물리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기여를 하며 노벨 물리학 상을 수상하게 된다.
엔리코 페르미(대니 데페라리)
엔리코 페르미는 이탈리아 출신의 물리학자로서 원자로 이론과 제어된 핵분열 연구에 기여한 인물이다. 그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핵분열 반응을 연구하고, 핵분열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페르미는 1942년에 시카고 대학교에서 제어된 핵분열 체인 반응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최초로 제어된 핵분열을 달성한 데 이어, 맨해튼 프로젝트에 핵분열 반응의 설계와 운영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프랭크 오펜하이머(딜런 아놀드)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남동생이며, 그 역시 물리학자로서 과학 분야에서 성공한 인물이다. 맨해튼 프로젝트 기간 동안 핵물리학 측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우라늄 농축에 기여했다. 그는 후에 자신의 과학적 헌신을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Exploratorium을 창설했다.
쿠르트 괴델(제임스 어바니악)
쿠르트 괴델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수학자로서, 수리논리학과 수학의 기초를 연구했다. 또한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로 유명하다. 오펜하이머와는 뉴욕의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에서 교류하며, 두 사람은 함께 학문적인 토론과 토의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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