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 — 음악이 서사가 될 때

케이팝-데몬-헌터스
출처: Sony Pictures Entertainment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이야기가 아니라 감각이다: 서울의 네온이 전장이 되는 방식

지하철 문이 닫히는 순간, 유리창에 비친 도시의 빛이 흔들린다. 서울의 밤은 언제나 약간 과장된 색채로 빛난다. 광고판의 네온, 편의점 간판의 흰빛, 버스 정류장 위에 걸린 전광판의 파란 화면. 그 사이에서 누군가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는다. 음악은 귀 안쪽에서 시작되지만 곧 도시의 표면으로 번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의 세계는 바로 그 감각에서 출발한다. 노래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를 바꾸는 힘처럼 작동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논리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이 영화에 대해 가장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다. 그러나 동시에 이야기야말로 가장 덜 중요한 부분이다. 악령을 사냥하는 아이돌 그룹, 인간과 악령 사이의 경계에 선 인물, 라이벌로 등장하는 또 다른 그룹, 그리고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배신. 이런 장치는 수십 년 동안 장르 영화가 반복해온 것들이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장르의 클리셰(Cliché)들을 카드처럼 섞은 뒤 다시 늘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단순함은 실수라기보다 어떤 설계에 가깝다. 이야기가 낯설지 않을수록 관객은 서사를 해석하는 대신 다른 것에 집중하게 된다. 화면의 리듬, 색채의 속도, 음악의 파형 같은 것들. 이 영화가 실제로 조직하는 것은 플롯(Plot)이 아니라 감각의 흐름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르 혼합’ 같은 표현보다 다른 단어가 필요하다. 이 영화가 하는 일은 장르를 섞는 것이 아니라 퍼포먼스의 문법을 서사의 구조로 바꾸는 것에 가깝다.

보통 영화에서 음악은 감정을 강조하는 장치다. 인물이 슬프면 음악이 흐르고, 승리하면 오케스트라가 고조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노래가 시작되는 순간 세계의 규칙이 바뀐다. 군무는 단순한 안무가 아니라 일종의 전투 포메이션이 되고, 후렴구는 공격의 타이밍이 된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액션을 안무처럼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안무 자체를 액션으로 변환한다. 그 결과 전투 장면은 싸움이라기보다 공연에 가깝고, 공연은 동시에 어떤 의식처럼 보인다.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왜 하필 K-팝인가.

K-팝은 흔히 음악 산업의 한 장르로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복합적인 구조를 가진다. 노래, 안무, 패션, 뮤직비디오, 팬덤(Fandom)의 반응까지 모두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작동한다. 음악은 그 시스템의 중심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영화는 바로 그 특징을 정확히 포착한다. 이 세계에서 아이돌은 가수가 아니라 집단적 에너지를 조직하는 매개다. 팬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순간 스크린 속 세계에서 결계가 강화된다는 설정은 과장처럼 보이지만, 실제 콘서트의 경험을 생각하면 그리 낯설지 않다. 수만 명의 관객이 동시에 같은 구호를 외치는 순간, 공연장은 일종의 공동체적 의식 공간으로 변한다. 영화는 그 감각을 판타지의 언어로 번역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K-팝을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K-팝이라는 문화의 구조 자체를 서사의 원리로 사용한다.

그러나 영화가 진짜로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음악이 아니라 공간이다.

스크린에는 서울의 풍경이 등장한다. 지하철 승강장, 명동의 거리, 남산의 실루엣. 그런데 이 풍경들은 다큐멘터리처럼 정확하게 재현되면서도 동시에 현실보다 약간 더 선명하다. 간판의 색은 실제보다 더 밝고, 거리의 빛은 조금 더 과장되어 있다. 마치 도시가 기억 속에서 다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이 미묘한 차이가 중요하다. 영화 속 서울은 실제 도시라기보다 문화적 상상력 속의 서울이다.

음식 장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김밥, 라면, 순대 같은 평범한 음식들이 화면에 등장한다. 특별한 미식의 세계가 아니라 일상적인 간식들이다. 이런 사소한 디테일은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에서 종종 생략되는 부분이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집요하게 강조된다.

그 결과 영화는 이상한 이중성을 갖게 된다. 한국 관객에게 이 장면들은 지나치게 익숙하다.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반면 해외 관객에게는 이 모든 것이 낯선 문화적 기호로 보일 것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간극 위에서 작동한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까치와 호랑이다. 영화 속에서 이 두 동물은 일종의 전령처럼 등장한다. 그 모습은 단순한 동물 캐릭터라기보다 한국 민화의 이미지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처럼 보인다.

작호도(鵲虎圖)에서 호랑이는 위엄 있는 맹수가 아니라 약간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까치는 옆에서 소식을 전하는 존재다. 이 그림의 유머러스한 감각이 영화 속 캐릭터에 그대로 옮겨온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이미지가 영화의 전체 스타일과 약간 충돌한다는 점이다. 네온빛 애니메이션의 매끈한 질감 속에서 민화의 익살스러운 표정은 약간 튀어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이질성이 영화의 매력이다.

이 작품은 끊임없이 서로 다른 미학을 병치한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광택, K-팝 공연의 과잉, 그리고 민화의 소박한 유머.

이 조합은 이론적으로는 어색해야 한다. 그러나 화면 속에서는 이상할 만큼 자연스럽게 섞인다.

그 이유는 아마 이 영화가 이야기의 논리보다 감각의 연쇄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서사를 엄격하게 따져 보면 이 영화에는 허점이 많다. 인물의 감정 변화는 때때로 갑작스럽고, 캐릭터의 설정도 놀라울 만큼 전형적이다. 어떤 장면들은 이미 다른 영화에서 수십 번 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도 영화는 이상하게 계속 움직인다. 마치 완벽한 플롯이 아니라 리듬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 기억에 남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감각이다. 네온빛으로 번지는 도시의 밤, 후렴구가 터질 때의 군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색채의 파도 같은 것들.

어쩌면 이것이 이 작품이 보여주는 가장 흥미로운 변화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글로벌 대중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감각의 조직 방식이라는 사실.

이 영화는 그 사실을 거의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야기는 익숙하고 캐릭터는 전형적이다. 그런데도 화면은 계속 빛나고, 음악은 계속 반복되고, 관객의 머릿속에는 어떤 멜로디가 남는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귓가에서 계속 울리는 후렴구처럼.

— 에디터 추천: 텍스트의 심층과 서사의 해부

시네마워즈가 선별한 네 가지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