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줄거리 및 해석에 대한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포스팅에서 확인해 주세요.
목차
- 새
- 밤
- 불꽃
작별하지 않는다 줄거리
먼저 사건의 배경이 된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중 항쟁과 그에 따른 정부의 무력 진압을 아우르는 사건입니다. 1945년 일본의 패망 후 한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나라는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 당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고, 미군정 시기부터 좌우 갈등이 심각했습니다. 현재도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 북한을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적국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제주 4.3 사건은 여러 요인이 얽혀 있었으며, 공산주의 세력인 빨치산의 활동도 사건의 중요한 배경 중 하나였습니다. 이러한 사건을 옳고 그름으로만 판단할 수 없고, 그 시대의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강 작가는 이 책을 이념적 관점에서 집필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작가가 강조하는 것은 역사를 이분법적으로 해석하기보다, 혼란의 시기 속에서 무고한 희생자들의 넋을 충분히 위로하지 못했다는 점에 중점을 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부: 새
주인공 경하는 눈이 내리는 벌판에 서 있다. 그곳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세워진 묘지와 같고, 나무들은 마치 무덤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경하는 이 장면에서 밀물이 밀려오는 상황을 맞으며, 과거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떠올린다. 이 통나무들이 과거의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미래에 대한 경고인지 고민한다. 도시의 학살 사건에 관한 책을 출판한 후 반복해서 꾸는 꿈이다. 기력이 쇠한 그녀는 유서를 작성하지만, 수신인을 정하지 못한 채 감정의 혼란을 겪는다.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벌판의 한쪽 끝은 야트막한 산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등성이에서부터 이편 아래쪽까지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여러 연령대의 사람들처럼 조금씩 다른 키에, 철길 침목 정도의 굵기를 가진 나무들이었다. 하지만 침목처럼 곧지 않고 조금씩 기울거나 휘어 있어서, 마치 수천 명의 남녀들과 야윈 아이들이 어깨를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는 것 같았다. 묘지가 여기 있었나, 나는 생각했다.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 우듬지가 잘린 단면마다 소금 결정 같은 눈송이들이 내려앉은 검은 나무들과 그 뒤로 엎드린 봉분들 사이를 나는 걸었다. 문득 발을 멈춘 것은 어느 순간부터 운동화 아래로 자작자작 물이 밟혔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다 생각하는데 어느 틈에 발등까지 물이 차올랐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믿을 수 없었다. 지평선인 줄 알았던 벌판의 끝은 바다였다. 지금 밀물이 밀려오는 거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물었다. 왜 이런 데다 무덤을 쓴 거야? 점점 빠르게 바다가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날마다 이렇게 밀물이 들었다 나가고 있었던 건가? 아래쪽 무덤들은 봉분만 남고 뼈들이 쓸려가 버린 것 아닌가? 시간이 없었다. 이미 물에 잠긴 무덤들은 어쩔 수 없더라도, 위쪽에 묻힌 뼈들을 옮겨야 했다. 바다가 더 들어오기 전에, 바로 지금. 하지만 어떻게? 아무도 없는데..
-작별하지 않는다 中-
2부: 밤
경하는 친구 인선으로부터 심상치 않은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향한다. 인선은 통나무 작업 중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해 수술 후 회복 중이다. 인선은 제주에 있는 자신의 집에 남겨둔 앵무새를 부탁하고, 경하는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제주로 가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했을 때, 폭설과 강풍으로 교통이 마비된 상황에 처한다. 힘겹게 인선의 집에 도착하지만 앵무새는 이미 죽어 있다. 경하는 앵무새를 나무 아래에 묻어주고, 그 순간 자신이 느끼는 슬픔에 당황한다. 새는 인선이 기르던 새일뿐 자신은 이렇게 고통을 느낄 만큼 사랑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3부: 불꽃
기력을 소진한 경하는 인선의 혼이나 환상으로 인선을 마주하게 되고, 인선의 가족사를 듣게 된다. 인선의 어머니는 가족을 잃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오빠의 행적을 찾기 위해 수십 년을 살아왔다. 경하는 인선 어머니의 소리 없는 투쟁을 이해하게 된다. 수많은 희생자들의 빛바랜 사진들과 기록들이 그들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서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휴전된 것뿐이었으니까. 휴전선 너머에 여전히 적이 있었으니까. 낙인찍힌 유족들도, 입을 떼는 순간 적의 편으로 낙인찍힐 다른 모든 사람들도 침묵했으니까. 골짜기와 광산과 활주로 아래에서 구슬 무더기와 구멍 뚫린 조그만 두개골들이 발굴될 때까지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고, 아직도 뼈와 뼈들이 뒤섞인 채 묻혀 있어.
-작별하지 않는다 中-
서평과 해석: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4.3 사건과 같은 역사적 비극을 다루며, 그 상처와 트라우마를 심도 깊게 탐구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사실과 픽션을 결합하여, 과거의 상처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작가 본인이 주인공 경하에 투영되어 있으며, 독자에게도 깊은 감정적 여운을 남깁니다. 특히,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집필한 뒤 다시 제주 4.3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게 합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4.3 사건의 희생자들을 상징하며, 작가가 이 비극을 통해 개인의 고통과 집단적 상처를 어떻게 풀어내는지를 중점적으로 탐구합니다. 이 과정에서 각 인물은 단순한 캐릭터를 넘어, 그 시대의 비극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기능합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세계를 묘사합니다. 눈에 덮인 제주도의 산간 마을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친구의 집에 도착하는 장면에서는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이는 주인공이 죽음과 현실을 마주하며, 생과 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복잡한 감정을 나타내는 메타포로 작용합니다. 친구의 환영을 통해 주인공은 과거의 고통을 회상하며, 그들과의 작별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죽은 앵무새와 그 그림자는 이 소설의 중요한 상징적 요소로, 죽음 이후에도 남아 있는 그들의 목소리와 흔적을 의미합니다. 앵무새는 생명의 덧없음과 잊힌 기억들을 상징하며, 주인공이 벽에 비친 새의 그림자를 따라 선을 긋는 장면은 과거의 상처를 복원하고 기억하는 과정을 은유적으로 나타냅니다. 이 과정은 개인의 트라우마가 사회의 역사적 상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역사적 진실을 마주해야 할 필요성과 그 과정의 아픔을 환기시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적 재현을 넘어, 집단적 상처와 개인의 트라우마를 깊이 있게 탐구하며, 우리 모두가 과거를 마주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작가의 섬세한 문체와 상징적인 서사는 독자에게 과거의 아픔을 직시하고, 이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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