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존 M. 스탈(John M. Stahl)을 고전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의 중요한 감독으로 다시 살펴보며, 그의 영화가 이후 더글러스 서크(Douglas Sirk)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중심으로 다룬다.
특히 슬픔은 그대 가슴에(1934)와 위대한 집념(1935)을 중심으로, 공간 구성과 인물 배치, 그리고 시선의 어긋남이 어떻게 영화 속 장면을 형성하는지를 살펴본다.
절제된 연출과 실내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탈의 영화는 고전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의 또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잊힌 거장 존 M. 스탈(John M. Stahl), 더글라스 서크의 화려한 미장센을 예고하다
비가 내린 뒤의 거리에는 묘한 빛이 남는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아스팔트는 하늘의 색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어딘가 더 깊고 어둡게 반사한다. 존 M. 스탈(John M. Stahl)의 영화들을 떠올릴 때마다 그런 표면이 생각난다. 겉으로는 고요하고 단정하지만, 그 아래에는 감정의 균열이 조용히 번져 있다. 그의 화면은 결코 소란스럽지 않다. 인물들은 종종 창가에 서 있고, 문턱에서 망설이며, 혹은 거울 앞에서 잠시 멈춘다. 그 멈춤의 순간에야 비로소 어떤 진실이 드러난다.
오늘날 고전 할리우드의 멜로드라마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더글러스 서크(Douglas Sirk)를 떠올린다. 그의 영화는 색채의 폭발과 아이러니한 감정의 리듬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 화려한 세계의 기원에는 종종 다른 이름이 있다. 바로 스탈이다. 스탈의 영화는 서크의 것처럼 장식적이지 않지만, 그 감정의 구조와 공간의 조직은 이미 이후의 멜로드라마가 향할 방향을 조용히 예고하고 있었다.
스탈이 만든 영화들은 겉보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절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슬픔은 그대 가슴에(1934, Imitation of Life)를 생각해보면,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종과 계급, 모성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긴장이 놓여 있다. 그러나 영화는 그것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대신 스탈은 인물들을 집 안의 공간 속에 배치한다. 문틀과 계단, 창문과 커튼이 인물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장벽처럼 서 있다. 감정은 외부로 터지지 않고 내부에서 천천히 축적된다.
이러한 방식은 종종 “고전적인 투명성”이라고 불리는 스타일로 오해된다. 그러나 스탈의 영화는 결코 투명하지 않다. 오히려 그의 미장센은 감정을 숨기기 위해 조직된 구조에 가깝다. 인물들은 종종 서로를 바라보지 못한다. 카메라는 그들의 시선을 약간 어긋나게 배치한다. 그 어긋남이야말로 영화의 진짜 드라마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이 점에서 스탈은 후대의 멜로드라마 감독들이 발전시킬 미학적 장치를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특히 위대한 집념(1935, Magnificent Obsession)에서 그 징후는 분명하다. 이 영화의 화면은 아직 테크니컬러의 과잉을 갖고 있지 않지만, 공간은 이미 감정을 시각적으로 번역하기 시작한다. 병원 복도, 호수 위의 안개, 그리고 집 안의 거대한 계단. 이 공간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도덕적 여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영화가 훗날 거대한 강박관념(1954, Magnificent Obsession)이라는 이름으로 서크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두 영화는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지만, 감정의 표현 방식은 극적으로 다르다. 스탈의 버전이 조용한 균열이라면, 서크의 버전은 화려한 균열이다. 색채는 더 강렬해지고, 프레임은 더 복잡해지며, 감정은 거의 오페라처럼 상승한다. 그러나 그 과장된 감정의 뼈대는 이미 스탈의 영화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스탈은 멜로드라마의 건축가였다. 그는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 그것을 구조로 만들었다. 인물들이 놓이는 위치, 공간의 깊이, 시선의 방향 같은 요소들이 서사의 윤곽을 형성한다. 이런 방식은 훗날 서크가 극단적으로 발전시킬 시각적 아이러니의 토대가 된다.
서크의 영화에서 거울과 창문은 종종 인물의 감정을 배반하는 장치로 등장한다. 사랑의 고백은 유리창 너머에서 이루어지고, 인물은 종종 프레임 속의 또 다른 프레임 안에 갇힌다. 그러나 이 장치 역시 스탈의 영화에서 이미 발견된다. 단지 훨씬 조용하고, 훨씬 덜 과장된 방식으로.
그래서 스탈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상한 감각이 생긴다. 마치 어떤 미래의 영화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상태로 그 안에 잠들어 있는 것 같다. 그의 화면은 단정하지만, 그 질서 속에는 감정의 압력이 축적되어 있다. 그것은 곧 폭발할 것처럼 보이지만 끝내 폭발하지 않는다. 대신 그 압력은 다음 세대의 영화로 흘러간다.
이런 의미에서 스탈은 종종 “잊힌 감독”으로 불리지만, 사실 그는 영화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어떤 미학의 완성자가 아니라, 그 미학이 태어나는 순간의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는 아직 화려해지지 않은 멜로드라마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얼굴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다른 감독의 그림자가 겹쳐진다. 색채가 더 강해지고, 카메라가 더 유려하게 움직이며, 감정이 더 격렬하게 드러나는 어떤 영화들.
그것은 스탈의 영화가 끝난 뒤에야 시작되는 세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세계는 이미 그의 프레임 속에,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