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박쥐(Thirst)〉는 오래전부터 수없이 변주되어온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그 안에서 드러나는 이야기는 결코 익숙하지 않다. 죄와 욕망, 구원과 타락, 믿음과 본능이 얽히며 만들어내는 무게는 단순한 장르적 틀로 설명하기 어렵다. 화면 위에서 차오르는 것은 비극이자 아름다움이며, 동시에 눈을 돌리고 싶을 만큼의 잔혹함이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 뒤에는 언제나 인간 내면의 갈등―윤리와 본능, 신념과 흔들림―이 조용히, 그러나 … 더 읽기
뉴욕 발레단의 화려한 무대 뒤에는, 박수 소리조차 닿지 않는 어둠이 숨어 있었다.그 어둠 속에서 춤추는 것은 발끝의 곡선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불안이었다. 아로노프스키의 《블랙 스완》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빌려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이중의 춤을 드러낸다.하얀 날개와 검은 날개, 백조와 흑조—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인물들의 심리 속에 잠들어 있던 또 다른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 블랙 … 더 읽기
만약 지난 몇 달 동안 인스타그램 피드를 제대로 본 적이 있다면, 분명히 마주쳤을 것이다. 뾰족한 귀, 날카로운 미소,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매력을 가진 인형 — 라부부(Labubu).한때 중국 팝 마트(Pop Mart)의 니치한 토이 컬렉션으로만 여겨지던 라부부는 이제 패션 피플의 가방에 달려 있고, 글로벌 셀럽들의 피드에 오르내리며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종류가 너무 많다는 … 더 읽기
패션의 세계에는 종종 설명하기 어려운 열풍이 존재한다. 때로는 실용성과 무관한, 심지어 이유조차 분명치 않은 작은 오브제가 시대의 상징이 되곤 한다. 라부부가 그렇다. 의미 없는 이름,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존재감. 이 작은 캐릭터는 어떻게 전 세계 패션 피플과 컬렉터의 욕망을 사로잡았을까? 라부부의 뜻과 정체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수집 문화의 지형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 더 읽기
“PROMETHEUS STOLE FIRE FROM THE GODS AND GAVE IT TO MAN.FOR THIS HE WAS CHAINED TO A ROCK AND TORTURED FOR ETERNITY.”“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불을 훔쳤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에게 주었다.그 죄로 그는 바위에 쇠사슬로 묶인 채, 영원히 고문을 당해야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는 단순한 전기(傳記)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이야기의 시작은 한 과학자의 삶이지만, 곧 그것은 과학과 권력, … 더 읽기
한 신이 있었다. 그는 신들의 질서를 거슬러 인간에게 불을 건넸다.그 불은 따뜻함이자 도구였고, 동시에 신들의 분노를 부르는 불씨이기도 했다. 프로메테우스. 티탄의 피를 이어받은 그는 한때 제우스를 도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결국 금기를 어긴 반역자로 낙인찍혔다. 영웅에서 죄인으로, 그리고 다시 해방된 존재로. 그의 삶은 단순한 신화의 줄거리를 넘어선다. 왜 그는 인간을 위해 그런 선택을 했을까. 또, … 더 읽기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신화는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곧 세계의 기원과 인간의 운명을 설명하는 최초의 철학이었으며, 질서를 세우는 거대한 설계도였다.그들의 눈에 신화란 하나의 무대였다. 암흑 같은 혼돈 위에 무대가 세워지고, 배우들이 차례로 등장하며, 권력이 교체되고, 드라마가 이어진다.그 무대의 막을 올리면, 혼돈 속에서 질서가 태어나고, 세대의 교체 속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 마치 영원히 되풀이되는 거대한 연극처럼. … 더 읽기
도시의 심장은 언제나 박동하고 있었다.수많은 스피커가 내뱉는 리듬 속에서,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이 듣지 못하는 음이 있다. 들리지 않지만 세상을 울리는, 더 깊은 차원의 진동. 그것은 오래된 전설이 다시 깨어나는 소리였다. 노래는 단순한 예술이 아니다.그건 인간의 감정이 가장 순수하게 발화하는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 세상을 지키는 존재들이 있다. 무대 위의 빛나는 스타들이자, … 더 읽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Nausicaä of the Valley of the Wind)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서막이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이 뿌리내린 최초의 토양이다. 이 작품은 종말 이후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지만, 단순히 자연과 인간의 대립을 그린 생태 동화에 머물지 않는다. 나우시카의 여정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문명의 오만이 남긴 잔해, 생명과 공존의 윤리, 그리고 구원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폭력 대신 … 더 읽기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 사회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하루아침에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가족과 공동체가 단절된 그 경험은 여전히 현재의 기억 속에서 꺼지지 않는 균열로 남아 있다. 신카이 마코토의 《스즈메의 문단속》은 그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되, 다큐멘터리적 기록이 아니라 시적 상상력으로 응답한다. 감독 스스로가 ‘재난 3부작’의 완결편이라 밝힌 이 작품은, 상실과 재건, 그리고 기억의 봉인을 주제로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