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ANSWER
페르소나 뜻 — 우리는 모두 하나 이상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페르소나(persona)는 원래 라틴어로 ‘가면(mask)’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으며, 오늘날에는 상황과 관계에 따라 사회에 보여주는 ‘공적 자아’ 또는 ‘사회적 역할’을 뜻한다. 심리학에서는 특히 칼 융(Carl Jung)이 사용한 개념으로, 개인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드러내는 자아의 측면을 의미한다. 현대에서는 심리학뿐 아니라 마케팅, SNS, 브랜딩 등에서 개인이나 브랜드가 외부에 보여주는 정체성과 이미지라는 의미로 확장되어 사용된다.
① (기독교) 지혜와 자유의사를 갖는 독립된 인격적 실체. 삼위일체론에서 신의 존재 양식을 뜻함.
② (미술) 사람의 몸을 조각한 작품.
③ (어원) 라틴어에서 유래, 본래는 연극 배우가 쓰던 가면을 뜻함.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 조용하다.
그러나 친구들 사이에서는 누구보다 활발하다.
어떤 사람은 온라인에서 자유롭고,
현실에서는 신중하다.
이 차이는 위선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상태를 설명하는 가장 오래된 단어가 있다.
페르소나(persona).
우리는 하나의 자아로 존재하지만,
하나의 얼굴로만 살아가지는 않는다.
페르소나 뜻 — 가면에서 시작된 단어
페르소나(persona)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왔다.
그 의미는 단순하다.
‘가면(mask)’.
고대 로마와 그 이전의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은 가면을 썼다.
이 가면은 단순히 얼굴을 가리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역할 그 자체였다.
왕의 가면을 쓰면 왕이 되었고,
광대의 가면을 쓰면 광대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가면이 거짓이라는 점이 아니라
가면이 역할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페르소나는 처음부터
자아가 아니라,
자아가 세상과 만나는 방식이었다.
페르소나는 심리학에서 ‘사회적 자아’가 되었다
이 단어는 20세기에 들어와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심리학자 칼 융은 페르소나를 이렇게 정의했다.
“개인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회적 얼굴.”
융에게 페르소나는 거짓 자아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구조였다.
우리는 직장에서 직장인의 페르소나를 사용하고,
가족 앞에서는 또 다른 페르소나를 사용한다.
이것은 기만이 아니라,
적응이다.
사회는 하나의 얼굴만으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페르소나는 우리를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다.
페르소나는 ‘진짜가 아닌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페르소나는 가짜 자아인가?
그렇지 않다.
페르소나는 거짓이 아니라,
선택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 대신,
상황에 맞는 일부를 보여준다.
그 선택된 부분이 페르소나다.
페르소나는 자아의 반대가 아니라,
자아의 인터페이스다.
현대의 페르소나 — 우리는 스스로를 설계한다
오늘날 페르소나는 심리학을 넘어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된다.
마케팅에서는
특정 고객을 상정한 ‘고객 페르소나’를 만든다.
브랜드는
브랜드 페르소나를 만든다.
SNS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디지털 페르소나를 만든다.
온라인에서 우리는
현실보다 더 신중하게 자신을 구성한다.
사진을 선택하고,
문장을 선택하고,
이미지를 선택한다.
우리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진다.
그리고 그 보여지는 구조가
페르소나다.
SNS 시대의 페르소나 — 우리는 스스로의 연출자가 되었다
과거에는 페르소나가
주로 사회적 역할에서 만들어졌다.
직장인.
부모.
친구.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스스로 페르소나를 만든다.
SNS 계정은
하나의 무대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대 위에서
스스로의 캐릭터를 설계한다.
이것은 위장이 아니라,
표현이다.
페르소나는 우리가 아닌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한 우리다.
페르소나의 진짜 의미 — 우리는 하나의 자아로 존재하지만, 하나의 얼굴로만 살아가지는 않는다
페르소나는 숨기기 위한 가면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과 만나는 방식이다.
우리는 항상 같은 사람이지만,
항상 같은 모습은 아니다.
이 차이는 모순이 아니라,
인간의 구조다.
페르소나는 말한다.
자아는 하나일 수 있지만,
표현은 하나일 필요는 없다고.
그리고 아마도,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은
가면을 벗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면이 진짜 나에 가까운지 이해해 가는 과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