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서약에 대하여
사랑의 서약은 대개 가장 밝은 날에 말해진다. 꽃이 만개하고, 웃음이 겹쳐지는 순간, 우리는 쉽게 믿는다. 이 감정이 오래갈 것이라고, 지금의 마음이 시간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서약의 진짜 무게는 그날이 아니라, 그 이후의 평범한 날들에서 드러난다.
사랑은 감정으로 시작하지만, 서약은 태도로 남는다. 누군가를 사랑하겠다는 말은 사실 “계속 선택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설렘이 줄어든 날에도, 상대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르겠다는 결심. 서약은 상대에게 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건네는 약속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의 서약을 영원성의 언어로 이해한다. “언제까지나”, “변치 않게”, “끝까지”. 그러나 삶은 그렇게 직선적이지 않다. 사람은 변하고, 관계는 늘 균열을 품는다. 그래서 성숙한 서약은 완벽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실패할 가능성까지 끌어안는다.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 이해하지 못하는 날이 올 수 있다는 전제를 포함한 약속.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순간, 서약은 오히려 현실에 발을 붙인다.
사랑의 서약이 가장 자주 시험받는 때는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이다. 대화가 줄어들고, 상대의 하루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아지는 시기. 그때 서약은 감정이 아니라 습관의 형태로 남아 있는지 묻게 된다. 오늘도 이 사람을 존중했는가, 오늘도 이 관계를 가볍게 소비하지는 않았는가.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느낌”이 아니라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사랑은 배우는 것이며, 연습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서약의 본질을 정확히 건드린다. 서약은 감정의 고조가 아니라, 반복되는 선택의 기록이다. 매일 조금씩 갱신되는 계약서와도 같다. 서명은 한 번이지만, 효력은 매일 확인된다.
그래서 사랑의 서약은 장엄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소박할수록 오래 남는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말보다, “당신이 힘들 때 옆에 있겠다”는 문장이 더 현실적이다. 미래를 장담하는 약속보다, 오늘을 책임지겠다는 태도가 더 진실하다.
결국 사랑의 서약은 서로를 묶는 족쇄가 아니라, 함께 버텨내겠다는 방향 표지판에 가깝다. 길을 잃을 때마다 돌아보게 만드는 문장. 관계가 흔들릴 때, 다시 처음의 태도로 돌아가게 하는 문장. 그 문장이 너무 낡아 보일 때조차, 여전히 읽을 수 있다면—그것이 서약이 관계 안에서 살아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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