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에 대한 사유적 비평

《어쩔수가없다》 정보

《어쩔수가없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공식 포스터
영화 〈어쩔수가없다〉 ⓒ ㈜모호필름, CJ ENM Studios

기본 정보

  • 감독: 박찬욱
  • 각본: 박찬욱, 이경미, 돈 맥켈러, 이자혜
  • 원작: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The Ax》
  • 제작사: CJ ENM Studios, 모호필름, KG 프로덕션
  • 배급사: CJ ENM MOVIE, Neon
  • 촬영 기간: 2024년 8월 17일 ~ 2025년 1월 15일
  • 개봉일: 2025년 9월 24일(한국), 2025년 12월 25일(북미)
  • 상영 시간: 139분
  • 제작비: 170억 원
  •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주요 출연진

  • 이병헌 – 유만수
  • 손예진 – 이미리
  • 박희순 – 최선출
  • 이성민 – 구범모
  • 염혜란 – 이아라
  • 차승원 – 고시조

시놉시스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유만수는 안정적인 삶이 한순간에 무너진 뒤 재취업에 실패하며 극단적 선택의 문턱으로 몰린다. 사회 구조가 개인을 밀어넣는 ‘어쩔 수 없음’의 비극 속에서 그는 잘못된 방향으로 발을 내딛고, 삶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향해 흘러간다.

음악

  • 음악 감독: 조영욱
  • 녹음: 런던 컨템포러리 오케스트라(애비 로드 스튜디오)
  • 삽입곡: 조용필 〈고추잠자리〉, 김창완 〈그래 걷자〉, 모차르트 Piano Concerto No.23

평가

  • 로튼 토마토 신선도: 100%
  • IMDb: 7.7/10
  • 국내 네이버 평점: 7점대(호불호 강함)

흥행

대한민국 누적 관객수: 294만 명 (2025년 11월 기준)

손익분기점: 130만 명 → 개봉 8일 차 조기 돌파

2025년 한국 박스오피스 순위: 8위

수상

  • 제50회 토론토국제영화제 국제 관객상
  • 제58회 시체스영화제 감독상
  • 제46회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손예진)

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

박찬욱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는 표면적으로 블랙코미디처럼 보인다. 피비린내 나는 살인 장면 위로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흘러나오고, 포카혼타스의 이미지는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러나 그 웃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절망의 이명(耳鳴)처럼 뒤따라오는 웃음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구조의 폭력성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치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어쩔 수 없음”이라는 구조적 조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영화다. 그리고 박찬욱은 이 세계를 고발하지도, 구원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비극과 웃음을 함께 응축해 보여준다.

Ⅰ. 완전함의 불온함 – 낙원의 시작과 붕괴의 운명

영화 어쩔수가없다 공식 포스터
영화 〈어쩔수가없다〉 ⓒ ㈜모호필름, CJ ENM Studios

영화는 의외로 온화한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가을 햇살 아래 가족과 장어를 굽는 만수(이병헌)의 모습은 박찬욱 영화에서 보기 드문 행복의 표상이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가족에게 사랑받으며, 그는 말한다. “이제 모든 것을 이뤘다.” 그러나 박찬욱의 영화에서 완전함은 언제나 전조다. 곧이어 장면은 목재가 분쇄되는 공장으로 전환되고, 장어의 형상은 뱀으로 읽히며, 이 아름다운 일상은 해고 통지서 한 장으로 붕괴된다.

이 낙원의 붕괴는 우연이 아니다. 박찬욱의 세계에서 행복은 늘 구조적 힘 앞에서 무력하다. 낙원의 상실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세계가 인간에게 부과하는 “조건”이다. 영화의 제목이 말하듯, 이 붕괴는 ‘어쩔 수 없음’의 서막이며, 그것이 이 작품이 구축하는 모든 사유의 출발점이다.

Ⅱ. 노동과 경쟁의 감옥 – 제로섬 구조의 비극

《어쩔수가없다》는 본질적으로 노동에 관한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해고자와 자본가의 대립이라는 익숙한 프레임을 거부한다. 《복수는 나의 것》(2002)이 자본의 폭력을 노골적으로 전면화했다면, 이 영화는 피라미드의 밑바닥에서 노동자끼리 벌이는 내전을 응시한다.

만수는 25년간 다닌 제지 회사에서 해고된 후 재취업을 시도하지만, 모든 문은 닫혀 있다. 그가 마주한 현실은 “사람은 넷, 자리는 하나”라는 냉혹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세계는 희소한 자원을 두고 경쟁하도록 설계돼 있고, 패배자는 낙오자로 전락한다. 박찬욱은 이 구조를 거대한 악당이나 노골적인 자본가의 이미지로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시스템은 부재하고, 그 부재가 더 큰 폭력으로 작동한다. 영화는 그저 생존을 위해 서로를 죽이는 이들의 몸부림을 보여줄 뿐이며, 그 처참한 경쟁의 광경 자체가 구조의 폭력을 가장 잔혹하게 드러낸다.

Ⅲ. 부조리한 합리성 – 범죄의 논리가 구조의 논리일 때

만수가 경쟁자들을 제거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그의 범죄는 단순한 광기나 욕망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부조리한 구조를 “합리적으로” 내면화한 끝에 이른 논리적 귀결이다. 그는 스스로 가상의 회사 ‘레드 페퍼’를 만들어 경쟁자를 속이고 제거한다. 그의 행동은 체계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체계의 논리를 극단화한 것에 불과하다.

박찬욱은 이 지점에서 결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만수의 살인은 체계의 바깥에서 일어난 일인가, 아니면 체계의 일부인가? 영화는 후자를 택한다. 그의 범죄는 구조를 파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재생산하고 심화한다. 부조리에 기초한 범죄는 부조리를 전복하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음”이란 바로 이 지점, 폭력조차 구조의 언어가 되어버리는 순간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Ⅳ. 공간이라는 구조 – 닫힌 세계의 건축학

이 영화에서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세계의 작동 방식을 시각화하는 장치다. 해고 통보 장면에서 카메라는 장면 전환을 통해 만수가 선택지를 잃고 내몰리는 감각을 구체화한다. 면접장 역시 나선형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으로 불안을 조성하며, 화장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장면은 ‘출구 없음’이라는 주제를 공간적으로 구현한다.

특히 후반부, 레드 페퍼 본사로 위장된 창고는 상징적이다. 표지판 하나 없는 무명(無名)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살인은 그 행위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을 암시하지만, 동시에 그 무명성조차도 거대한 구조의 그림자 아래 있음을 드러낸다. 공간의 닫힘은 영화가 말하는 세계의 닫힘과 정확히 겹친다.

Ⅴ. 웃음의 잔혹함 – 장르를 전복하는 전략

《어쩔수가없다》의 웃음은 결코 해방의 웃음이 아니다. 그것은 절망의 한복판에서 솟아나는 기묘한 웃음이며, 인간이 구조에 맞서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뼈아프게 각인시킨다.

살인의 순간에 울려 퍼지는 익숙한 대중가요, 디즈니 신화를 비틀어낸 패러디는 순간적인 해학을 제공하지만, 곧 그것이 부조리의 다른 얼굴임을 깨닫게 한다. 웃음은 구조를 잠시 지워주는 마취제가 아니라, 구조가 얼마나 완벽하게 인간을 포획하고 있는지를 폭로하는 기제다. 박찬욱이 만들어낸 이 희극적 리듬은 단순한 장르 혼합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의 모순이 드러나는 방식이다.

Ⅵ. 인간의 얼굴 – 웃음과 절망의 경계에서

이병헌의 얼굴은 이 영화가 품은 세계의 압축이다. 초반부 그는 안정된 가장의 표정을 짓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얼굴은 무표정과 광기를 오간다. 마지막에 이르면 웃음과 눈물이 구분되지 않는, 감정이 탈색된 표정에 도달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인 인간의 얼굴이며, 이 영화가 제시하는 인간 조건의 초상이다.

이 표정은 단지 연기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구조의 내면화된 흔적이며, 세계가 인간에게 새겨놓은 각인이다. 만수는 시스템을 파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논리에 흡수된다. 그의 몸짓과 표정은 개인의 심리를 넘어, 세계가 인간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Ⅶ. 어쩔 수 없는 세계를 직시하는 용기

《어쩔수가없다》는 구조를 고발하지 않는다. 그것은 더 이상 고발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시스템은 어디에도 없고, 대신 그것의 논리가 모든 인간의 몸과 사고 속에 스며들어 있다. 박찬욱은 이 세계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세계가 인간을 어떻게 변형시키고, 그 변형 속에서 인간이 어떤 웃음을 짓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 웃음은 절망의 반대편이 아니라 절망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도달한 가장 근본적인 통찰이다. 우리가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세계는 우리 안에 있다. 박찬욱은 그 사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웃음과 절망이 구분되지 않는 세계, 범죄조차 구조의 일부가 되는 세계, 출구 없는 복도처럼 닫힌 세계. 《어쩔수가없다》는 그 세계를 정직하게 응시하는 카메라이며, 우리 시대를 비추는 잔혹한 거울이다.

Ⅷ. 박찬욱 감독 필모그래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