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訓民正音)
훈민정음 정보: 창제·반포일 및 의의

- 명칭: 훈민정음 (訓民正音)
- 오늘의 명칭: 한글
- 창제:
- 반포:
- 창제자: 세종대왕
- 협력자: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최항, 박팽년, 강희안, 이개, 이선로
- 의미: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 초기 글자 수: 28자 (현재 24자 사용)
- 반포 문헌: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제70호)
- 반포 관련 사항: 1446년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공식 반포되었으며, 창제 원리와 운용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이후 한글의 표준 체계로 자리 잡았다.
- 특징:
- 발음 기관을 본뜬 자음과 천·지·인의 원리를 반영한 모음 체계
-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문자 구조
- 창제 원리와 사용법이 해설서로 전해지는 세계 유일의 문자
- 역사적 의의:
- 우리말 표기의 전면적 가능성 확보 및 문자 생활의 민주화
- 한국어 연구·교육·기록의 토대 마련
- 외래어·자연음까지 표기 가능한 보편적 문자 체계 확립
- 세계적 인정:
- 훈민정음 해례본,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 관련 인물:
- 세종대왕
- 집현전 학자: 정인지, 신숙주 등
문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어떻게 말하고, 생각하고, 서로를 이해했는지의 기록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한글’이라 불리는 이 문자는, 처음부터 백성을 위한 약속으로 시작되었다.
이 약속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매년 10월, ‘한글날’이라는 이름으로 기념된다. 그날의 기원과 의미가 궁금하다면 [한글날의 뜻과 유래]에서 더 깊이 확인할 수 있다.
백성을 위한 바른 소리: 훈민정음 뜻과 창제 배경
조선의 하늘 아래, 한글은 처음부터 단순한 문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권력자의 칙령도, 학자의 실험도 아닌, 백성의 입과 귀를 위한 하나의 약속이었다. 이름부터가 그랬다. 훈민정음(訓民正音) —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이 네 글자의 뜻은 놀랍도록 직설적이면서도 따뜻하다. ‘훈(訓)’은 가르친다는 뜻이고, ‘민(民)’은 백성을, ‘정음(正音)’은 바른 소리를 말한다. 문자라 하면 흔히 추상적이거나 권위적인 이름을 붙이기 마련인데, 훈민정음은 달랐다. 애초부터 그 존재 이유가 ‘백성’이었다.
15세기 조선, 글자는 있었지만 말은 없었다. 양반 관료들은 중국에서 들여온 한자를 통해 학문을 논하고 법을 기록했지만, 그것은 오직 그들만의 언어였다. 농부와 장사꾼, 아낙과 아이들이 쓰는 말은 여전히 입에서 입으로만 흘러다녔다. 기록되지 못한 말은 쉽게 잊히고, 읽지 못한 백성은 쉽게 지배된다.
세종은 바로 이 간극을 보았다. 백성의 말과 지배의 언어 사이에 놓인 깊은 골짜기를. 그리고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결심이 곧 훈민정음의 시작이었다.
훈민정음은 단순히 새로운 문자를 만든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한 나라의 언어를 ‘백성의 것’으로 돌려주려는 혁명이었다. 말과 글을 자유롭게 쓰고 읽을 수 있는 권리, 지금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이 권리가 15세기 조선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종은 “어리석은 백성이라도 쉽게 배우고, 자기 뜻을 펴게 하라”는 뜻을 품었다. 이념이나 지배를 위한 문자가 아니라, 생활과 생각을 위한 문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1443년,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은 백성의 입과 귀를 위한 새로운 소리를 설계하기 시작했고, 1446년, 마침내 그것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것이 바로 훈민정음, 오늘날 우리가 ‘한글’이라 부르는 문자다.
훈민정음은 이름부터 목적까지 하나의 선언문처럼 서 있다. 백성을 위한 문자이자, 백성을 위한 약속이며, 더 나아가 생각의 권리를 돌려준 혁명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금도 우리가 글을 읽고 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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