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서사와 장면 해석은 이전 글에 담겨 있다. 그 내용을 먼저 읽어야, 지금부터 펼쳐질 실존 인물과 시대상이 제대로 보인다.
영화 ‘색계’ 실제 사건, 실존 모델과 시대상
1939년 겨울, 상하이의 공기는 늘 긴장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점령군의 군화 소리가 바닥을 울리고, 카페의 커튼 뒤에서는 은밀한 밀담이 오갔다. 그 혼돈 속에서 한 젊은 여자가 자신의 운명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정핑루였다.
정핑루는 ‘상하이의 꽃’이라 불렸다. 세련된 옷차림, 자유로운 언어 감각, 그리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기품. 하지만 그녀의 삶은 무도회장의 화려한 불빛에서 멈추지 않았다. 중일전쟁이 터지자 그녀는 국민당 정보기관의 지령을 받고, 위험한 첩보 활동에 몸을 던졌다. 임무는 단 하나. 괴뢰정부의 공포 정치 책임자, 딩모춘을 암살하는 것.
딩모춘은 ‘이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영화 속에 다시 태어났다. 원래는 국민당 정보기관 소속이었으나, 곧 일본에 협력하며 권력의 사다리를 빠르게 올라탄 인물이었다. 그의 관저에서는 끊임없이 비밀 회의와 고문이 이어졌고, 그의 이름 앞에는 곧 ‘도살자’라는 오명이 따라붙었다.
정핑루는 그의 마음을 무너뜨릴 유일한 무기가 될 수 있었다. 미소, 대화, 유혹—그녀가 가진 모든 자산은 임무와 하나로 엮였다. 1939년 12월, 그녀는 일본 헌병대 대장을 통해 딩모춘에게 접근했고, 한 옷가게에서 그를 만나기로 한 약속을 받아냈다. 가게 안팎에는 동료들이 매복해 있었다. 계획은 단순했다. 그가 들어서는 순간, 방아쇠를 당기는 것. 그러나 작전은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순간의 어긋남은 치명적이었고, 암살은 실패로 끝났다. 곧바로 체포된 그녀는 이듬해 괴뢰 정부의 법정에 세워졌고, 재판은 번개처럼 끝났다. 스물두 살의 나이에 총살형이 선고되던 날, 그녀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닫혔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도 정핑루는 저항과 희생의 얼굴로 기억 속에 남았다.
이 사건은 몇 년 뒤 장아이링의 손에 들어갔다. 그녀는 남편 후란청을 통해 사건의 내막을 전해 듣는다. 그러나 장의 시선은 단순한 ‘애국적 순교자’의 서사를 거부했다. 그녀가 쓴 《색, 계》에는 오히려 인간의 흔들림이 있다. 국가와 사랑 사이에서, 욕망과 충성심 사이에서, 한 여자가 어떻게 균열을 일으키며 무너져 가는지. 장은 그 틈새를 들여다보았다.
수십 년 뒤, 이안 감독은 그 서사를 영화로 옮겼다. 역사적 사실은 여전히 그림자처럼 존재했지만, 영화는 육체와 감정의 진동을 전면으로 끌어올렸다. 연인의 속삭임 같은 순간이 곧 목숨을 건 배신으로 뒤바뀌는 그 긴장. 시대의 폭력은 사랑을 도구로 변형시켰고, 사랑은 곧 죽음의 문턱에서 가장 격렬하게 불탔다.
《색, 계》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단순하지 않다. 정핑루는 누구였는가? 딩모춘은 무엇을 상징했는가? 장아이링은 왜 이 이야기를 차갑게, 그러나 무섭도록 예리하게 기록했는가? 역사는 하나의 사건으로 멈추지만, 예술은 그 사건을 다시 열어젖히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불안정한 본질을 드러낸다.
정핑루(영화 속 왕치아즈, 탕웨이 扮)
정핑루 프로필

- 본명: 정핑루(鄭蘋如)
- 출생: , 중화민국 저장성 란시
- 사망: , 중국 상하이
- 국적: 중화민국
- 직업: 사교계 명사, 스파이
- 활동 기간: 1937년 ~ 1940년
- 소속: 중화민국 국민당 정보조직
- 학력: 상하이 정치·법률대학
정핑루 가족
- 부모:
- 정월위안(鄭鉞原, 鄭英伯) — 국민당 혁명가, 푸단대학 교수, 쑨원 추종자
- 기무라 하나코(木村花子, 중국명 鄭華君) — 일본인 출신
- 형제:
- 정해청(鄭海澄) — 중화민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 1944년 전사
- 약혼자:
- 왕한훈(王漢勛) 대령 — 공군 조종사, 1944년 전사
주요 활동 및 사건
- 1937년 상하이 전투 이후 국민당 비밀첩보원으로 활동 시작
- 유창한 일본어와 사교계 인맥을 활용해 일본군 및 괴뢰정권 정보 수집
- 1939년 3월부터 왕징웨이 정권 보안 책임자 딩모춘(丁默邨) 암살 작전 수행
- 1939년 12월 10일·21일 두 차례 암살 시도 — 모두 실패
- 두 번째 시도 후 체포되어 왕징웨이 정권에 의해 구금
- 1940년 2월, 상하이 중산로 인근에서 22세 나이로 비밀리에 총살형
유산과 평가
- 대만 국민당 정부로부터 ‘순국열사’로 추서
-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항일 여영웅’ 칭호 수여
- 2009년 상하이 칭푸에 기념비와 동상 건립
- 장아이링의 소설 《색, 계》(1979)와 이안 감독 영화 《색, 계》(2007)의 여주인공 원형(왕지아즈, 탕웨이 扮)으로 알려짐
- 유족과 일부 평론가들은 소설·영화 속 인물 묘사가 실제 영웅적 행위를 왜곡했다고 비판
딩모춘(영화 속 ‘이 선생’, 양조위 扮)
딩모춘 프로필
- 본명: 딩모춘(丁默邨)
- 다른 이름: 딩러성(丁勒生)
- 출생: , 후난성
- 사망: , 장쑤성 쑤저우
- 국적: 중화민국
- 직업: 정치인
- 활동 기간: 1920년대 ~ 1945년
- 소속: 중국 공산당(초기) → 중국 국민당 → 왕징웨이 괴뢰정권
- 주요 직위: 국민당 조사통계부(비밀경찰) 부장, 왕징웨이 정권 사회부 장관·교통부 장관, 저장성 주지사
유산과 평가
- 중일전쟁기 대표적인 친일 부역자이자 악명 높은 비밀경찰 책임자로 평가됨
- 장아이링의 소설 《색, 계》와 이안 감독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이 선생, 양조위 扮)의 모티브 중 한 명으로 알려짐
장아이링의 삶과 작품 세계, 그리고 영화와 원작 사이의 미묘한 간극까지 —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장아이링: 스크린 밖에서 만나는 원작 소설의 진면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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