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기록은 종종 축복의 순간보다 모순과 긴장의 자리에 뿌리를 내린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을 오르던 발걸음은 단순한 순종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 이해의 한계를 넘어서는 믿음의 심연을 드러낸다. 오래된 이야기일지라도, 그 질문은 여전히 현재를 향해 열려 있다.
‘시험’의 배경엔 ‘언약’이 있었다. 모든 이야기는 창세기 17장에서 시작된다. [확인하기]
창세기 22장,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 이유와 그 문화적 해석
아브라함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매혹적이면서도 가장 불편한 장면은 모리아 산으로 향하는 길 위에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아들, 약속의 상징이자 기도의 결실이었던 이삭을, 하나님이 제물로 바치라 명령하는 순간이다. 축복의 근거였던 아들이 순식간에 시험의 도구로 바뀌는 아이러니, 바로 거기에서 신앙의 본질이 드러난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기록한다. 항의도, 변명도 없다. 그는 단지 아침 일찍 일어나 길을 떠난다. 신학자들은 이 침묵을 곧 ‘믿음의 정점’이라 부르지만, 그것은 동시에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아들을 바치라는 부르심 앞에서, 아브라함은 어떻게 그토록 말없이 순종할 수 있었을까. 히브리서 기자는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믿음을 품었다고 해석한다. 믿음이란, 합리와 감정을 넘어선 전적인 신뢰라는 것이다.
모리아 산을 오르던 길, 아들은 질문한다. “아버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요?” 아브라함의 답은 단순하면서도 기묘한 울림을 지닌다. “하나님이 준비하시리라.” 이 말은 동시에 현실을 유보하는 말이자, 아직 드러나지 않은 계시의 전조다. 훗날 기독교 전통은 이 대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견하는 예언적 의미를 읽어냈다. 아버지가 아들을 바치는 자리, 그러나 대신 드려질 제물은 결국 하나님 자신이 예비한다는 신학적 병치가 거기에 있다.
칼이 들어 올려지고, 이삭이 제단 위에 묶인 순간, 이야기는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그 긴장감은 곧 하나님의 개입으로 풀린다. 아브라함이 손을 멈추자, 수풀에 걸린 숫양이 대신 제물이 된다. 그 순간 아브라함이 부른 이름은 “여호와 이레”—하나님이 예비하신다. 이 표현은 단지 도움의 약속이 아니라, 인간의 순종이 끝까지 다다른 자리에서 드러나는 신적 응답을 뜻한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 한 가문의 개인적 시험으로만 남아 있지 않는다. 신약은 이 장면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연결한다. 모리아 산은 곧 골고다 언덕의 그림자가 되고, 이삭은 예수의 선취적 이미지로 읽힌다. 그러나 설사 신학적 독해를 내려놓는다 해도, 본문의 긴장감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는다. 믿음은 언제나 우리가 가장 소중히 붙든 것을 요구하며, 그 순간마다 우리는 결단을 강요받는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신앙이란 결국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묻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서 들려오는 메시지는 여전히 동일하다. 하나님은 인간의 빈손을 보시고, 가장 필요할 때 그 손에 채우신다. 모리아 산은 멀리 있지 않다. 그것은 각자의 삶 속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으라는 부름이 들려올 때마다 다시 열리는 산이다.
창세기 22장 1~24절 성경 구절 펼쳐보기
창세기 22장 1~24절
1 그 일이 있은 뒤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시며 말씀하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더라.
2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보여줄 산 위에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시니라.
3 아브라함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종과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을 향하여 길을 떠났더라.
4 사흘째 되는 날,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멀리 그곳을 바라본지라.
5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 머물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너희에게로 다시 돌아오리라 하더라.
6 아브라함이 번제 나무를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가더라.
7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버지여 하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하니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더라.
8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로 드릴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가더라.
9 그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곳에 이르러,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올려놓았더라.
10 아브라함이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라.
12 그가 이르시되,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내가 아노라 하시니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한 숫양이 뿔이 덤불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곳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16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이 일을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라.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준행하였음이라 하셨더라.
19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로 돌아오니, 그들이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20 이 일이 있은 뒤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전하여 이르되, 보라, 밀가가 네 형제 나홀에게도 자녀를 낳았나이다 하니,
21 맏아들은 우스요, 그 다음은 부스요, 또 그의 형제 그므엘과,
22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23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과, 그의 아내 밀가에게서 난 자들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더라.
24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여인도 자녀를 낳았으니, 그 이름은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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