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프로필로 읽는 삼성 왕조의 역사|가족관계부터 경영 스토리까지

— 이재용 프로필

이재용 프로필

기본 정보

  • 본명 : 이재용 (李在鎔, Lee Jae-yong)
  • 출생 : 1968년 6월 23일
  • 출생지 : 미국 워싱턴 D.C.
  • 국적 : 대한민국
  • 본관 : 경주 이씨
  • 신체 : 키 182cm, 몸무게 84kg, 혈액형 B형
  • 학력 : 경기국민학교 → 청운중학교 → 경복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동양사학 학사 →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영학 석사 → 하버드대학교 경영학 박사 과정 수료
  • 종교 : 무종교
  • 병역 : 전시근로역(추간판 탈출증)

가족관계

  • 조부 :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 외조부 : 홍진기 (전 법무부 장관, 언론인)
  • 아버지 : 이건희 (삼성그룹 2대 회장)
  • 어머니 : 홍라희 (호암미술관 전 관장)
  • 형제자매 : 이부진, 이서현, 이윤형
  • 전 배우자 : 임세령 (1998년 결혼 – 2009년 이혼)
  • 자녀 : 아들 이지호, 딸 이원주

경력 및 소속

  •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 입사
  • 2003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
  • 2010년 삼성전자 COO 부사장 → 사장
  • 2012년 삼성전자 부회장
  • 2018년 삼성 총수
  • 2022년 삼성전자 회장 취임

재산

  • 2026년 기준 추정 재산 약 30조 7천억 원 (209억 달러)
  •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SDS 등 주요 계열사 지분 보유
  • 2023년 배당금 수입만 약 3,244억 원으로 국내 1위

주요 업적

수상 및 평가

  • 2024년 포브스 선정 대한민국 50대 부자 1위
  • 2025년 대한민국 역대 최고 부호 등극
  • 2025년 ‘가장 신뢰받는 재벌 총수’ 여론조사 1위

개인 취향 & 특징

  • 승마 선수로 국제대회 금메달 경험
  • 야구·축구 직관을 즐기는 스포츠 애호가
  • 등산과 고지도 수집을 취미로 삼음
  • 소탈한 이미지와 유머 감각으로 대중적 호감도 높음
  • 영어·일본어 능통, 국제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
  • 사회공헌 활동 및 기부 적극 참여
삼성 회장 이재용 프로필 사진
이재용 프로필로 풀어낸 삼성 왕조의 서사

이재용 프로필로 본 삼성 왕조 – 가족관계와 권력의 계승

기업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선택들이 쌓이고, 그 선택들이 어느 순간 하나의 방향을 만든다. 반대로, 기업이 계속 살아남는 방식 역시 다르지 않다. 거창한 선언보다, 반복되는 판단이 더 중요하다. 수천억 원이 투자되는 순간에도, 그 결정은 의외로 조용히 이루어진다. 회의실 안에서, 몇 개의 문장으로. 그리고 그 이후, 수만 명의 일이 바뀐다.

삼성은 그런 방식으로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기업 중 하나가 되었고,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오랫동안 중심을 지켜왔으며, 이제는 인공지능과 미래 반도체 경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그러나 기업은 스스로 방향을 선택하지 않는다. 언제나 누군가가 그 방향을 선택한다.

이재용은 바로 그 선택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는 삼성을 만든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삼성이 앞으로 어떤 기업이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사람이다. 창업은 시작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의 시간은 지속에 관한 이야기다. 이미 정상에 오른 기업을 유지하고, 동시에 다음 단계로 이동시키는 일. 그것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책임이다.

그의 삶은 선택 이전에, 환경 속에서 시작되었다.

1968년 6월 23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태어난 그는 처음부터 한국 산업사의 중심과 연결된 가족 안에 있었다. 할아버지 이병철이 1938년 대구에서 시작한 작은 무역회사는, 이후 전자와 금융, 화학을 아우르는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1987년, 그 기업은 그의 아버지 이건희에게로 이어졌다.

이건희는 삼성을 근본적으로 바꾼 인물이었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선언을 남긴 이후, 삼성은 빠르게 변했다. 양을 늘리는 기업에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술 기업으로 이동했다. 반도체에 대한 대규모 투자, 품질 중심 경영, 글로벌 전략. 삼성은 그 시기에 지금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이 변화는 기업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 변화의 시간 속에서, 그의 아들도 성장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87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 입학했다. 경영학이 아니라 역사였다. 그것은 의외의 선택처럼 보였지만, 역사라는 학문은 언제나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무엇이 살아남고, 무엇이 사라지는가.

어떤 왕조는 번성하다가 무너지고, 어떤 조직은 위기를 통과하며 더 강해진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언제나 한 시점의 선택이다. 그는 기업 경영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시간과 선택의 관계를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이후 그는 일본 게이오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게이오는 일본 산업계와 밀접하게 연결된 교육기관이었고, 당시 일본의 전자기업들은 삼성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다. 그곳에서 그는 경쟁자의 시각에서 산업을 바라보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박사과정(DBA)에 진학했다. 학위를 끝까지 마치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글로벌 기업들이 어떤 방식으로 전략을 설계하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그가 삼성전자에 입사한 것은 1991년이었다.

처음부터 전면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그는 주로 해외 사업과 글로벌 전략 부문에서 경험을 쌓았다. 기업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관계를 만들고,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는지를 내부에서 배우는 시간이었다. 특히 해외 파트너들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으며, 그는 자연스럽게 삼성의 외부와 내부를 동시에 이해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위치 역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2012년, 그는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삼성은 갑작스러운 전환점을 맞았다. 그 순간 이후, 그는 공식적인 회장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그룹의 중심에서 주요 의사결정을 이끌게 되었다.

그 시기 삼성은 중요한 선택들을 이어갔다. 반도체 생산에 대한 대규모 투자,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 강화, 그리고 바이오 산업으로의 확장. 이 선택들은 단기간에 결과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10년과 20년을 준비하는 판단이었다.

그의 경영 방식은 눈에 띄는 선언보다, 방향을 유지하는 데 가까웠다.

그의 삶에는 기업 경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8년, 그는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의 장녀 임세령과 결혼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아들 이지호와 딸 이원주가 태어났다. 그러나 2009년, 두 사람은 이혼했다. 이후 그의 개인적인 삶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많이 드러나지 않는 영역으로 남게 되었다.

그가 공식적으로 삼성 회장이 된 것은 2022년 10월 27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갑작스러운 시작이라기보다, 이미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역할이 공식적인 이름을 갖게 된 순간에 가까웠다. 그는 이미 기업의 중심에서 선택을 이어오고 있었고, 이제 그 선택들이 그의 이름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기업은 한 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기업을 이어가는 일 역시, 단순히 자리를 물려받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계속해서 증명해야 하는 과정에 가깝다.

삼성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반도체를 만들고, 새로운 기술을 준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언제나 누군가의 판단을 통과한다.

이재용에게 기업을 이끈다는 것은, 무언가를 처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거대한 시간을 멈추지 않게 만드는 일이다.

그는 창업자의 이름을 이어받았지만, 그의 역할은 계승이 아니라 증명에 가깝다. 과거가 만든 위치 위에서, 미래로 이어질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 그 반복 속에서만, 기업은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삼성은 다음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여전히 한 사람의 선택을 통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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