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종말은 언제나 먼 미래의 예언처럼 말해지지만, 사실 그것은 이미 우리의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온 장면일지도 모른다. 정복과 전쟁, 기근과 죽음—묵시록의 네 기사(The 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는 단지 신화적 환상이 아니라, 문명의 거울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다.
요한계시록 6장 속 묵시록의 4기사, 끝의 서사와 반복되는 역사
요한계시록 6장은 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린 양이 봉인을 하나씩 떼어내는 순간, 세상은 순차적으로 균열을 드러낸다. 처음 네 개의 인이 열리자, 네 마리의 말과 그 위의 기수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종교적 상징으로 흔히 알려진 이른바 ‘묵시록의 4기사’다. 그러나 이들의 행진은 단지 종말을 향한 종교적 이미지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인류가 되풀이해온 문명의 주기—정복, 전쟁, 기근, 죽음—을 압축한 하나의 서사다.
첫 번째 기수는 흰 말을 탄 자다. 그는 활을 들고 면류관을 쓴 채 나아간다. 흰색은 흔히 순수와 정의를 떠올리게 하지만, 여기서 흰 말은 역설적이다. 그는 질서를 지키는 자가 아니라, 질서를 깨뜨리며 등장한다. 어떤 해석은 그를 복음의 상징으로 보지만, 더 많은 독해는 그를 제국적 정복자, 혹은 세계 질서를 교란하는 권력의 은유로 파악한다. 외형상 평화의 옷을 입고 있으나, 그 뒤에는 언제나 새로운 지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뒤이어 나타나는 붉은 말의 기수는 훨씬 직접적이다. 그의 존재는 화평을 걷어내고 피를 불러온다. 정복이 있은 후 전쟁이 따른다는, 단순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인간사의 연쇄. 국가 간의 충돌에서부터 내부의 내전, 이념과 인종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붉은 말은 모든 폭력의 색을 상징한다. 그의 큰 칼은 단지 무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이의 신뢰와 공동체의 붕괴를 의미한다.
세 번째, 검은 말을 탄 자는 손에 저울을 쥐고 나타난다. 저울은 공정한 거래의 도구처럼 보이지만, 계시록의 서술에서 그것은 역설적 불균형을 드러낸다. 하루 품삯으로 고작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극심한 기근, 혹은 시장의 붕괴다. 곡식은 고갈되지만, 포도주와 기름은 보존된다. 이는 곧 경제 위기 속에서도 특정 계층만은 보호받는 불평등의 구조를 은유한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굶주림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창백한 말의 기수는 이름 그대로 ‘죽음’이다.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은 지옥이며, 그가 휘두르는 것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전염병과 재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모든 위협이다.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창백한 색은 생명이 빠져나간 얼굴의 빛깔이자, 문명이 무너진 뒤 남는 공허함의 색이다.
이 네 기수의 행렬은 단순한 상징적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패턴, 인간 문명이 되풀이해온 고전적 비극의 서술이다. 정복이 질서를 깨뜨리고, 전쟁이 그 뒤를 따르며, 기근이 생존을 위협하고, 죽음이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1세기 로마 제국의 억압 속에서 기록된 요한계시록은 분명히 특정한 시대적 배경을 가진 텍스트였다. 그러나 이 상징은 시대를 초월한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도 우리는 다른 방식의 네 기수를 목격한다. 군사적 정복 대신 자본과 권력이 세계를 재편하고, 전쟁은 여전히 이념과 민족의 이름으로 반복된다. 경제 위기는 점점 더 많은 이들을 소외시키며, 팬데믹과 기후 재난은 문명의 유리벽을 손쉽게 흔든다.
묵시록의 질문은 결국 미래의 예언이 아니다. 그것은 반복되는 현재에 대한 거울이다. 네 기수는 매번 다른 얼굴로 우리 곁에 나타난다. 문제는 그 순환을 인식하고도, 우리가 그것을 멈출 의지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요한계시록 6장 1~17절 성경 구절 펼쳐보기
요한계시록 6장 1~17절
1 어린 양이 첫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매 네 생물 중 하나가 우레와 같은 소리로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내가 보니 흰 말이 나타나더라. 그 위에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았으며, 나아가 이기고 또 이기려 하더라.
3 어린 양이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4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위에 탄 자가 큰 칼을 받았고,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사람들이 서로 죽이게 하더라.
5 어린 양이 셋째 인을 떼실 때에,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더라. 그 위에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네 생물들 가운데서 나는 듯한 소리가 들리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라. 그러나 기름과 포도주는 해하지 말라 하더라.
7 어린 양이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넷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니 청황색 말이 나오더라. 그 위에 앉은 자의 이름은 사망이요,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받아 칼과 굶주림과 죽음과 들짐승으로 사람을 죽이더라.
9 어린 양이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더라.
10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주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의 피를 갚아 주시지 아니하시기를 언제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더라.
11 이에 그들에게 각각 긴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말씀하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들처럼 죽임을 당하여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12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털옷같이 검어지고, 달이 온통 피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큰 바람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듯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두루마리 말리듯 사라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겨지더라.
15 땅의 왕들과 귀족들과 장수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16 산들과 바위들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무너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과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하니,
17 이는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능히 서리오 할 자가 누구이랴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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