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서서히 내려앉아, 창밖 어둠이 틈새마다 스며들었다.
신혼의 집이어야 했지만, 수진의 밤은 언제나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남편 현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몸을 일으키곤 했다. 그때마다 알 수 없는 말들을 흘리거나, 부엌을 서성이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차가운 빛 아래에서 날고기와 생선을 날것 그대로 씹어 삼키는 모습은, 수진의 기억에 가시처럼 박혀 남았다.
그녀는 눈을 감는 것조차 두려웠다. 언제든 그가 ‘다른 무언가’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숨결 하나마저 무겁게 짓눌렀다.
의사는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집 안을 떠도는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형체 없는 그림자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서서히 번져가는 듯했다.
그리고 이제, 수진은 뱃속의 작은 생명까지도 그 그림자의 손길에 닿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차마 떨쳐낼 수 없는 공포와 마주하고 있었다.
영화 잠 정보: 감독·장르·평점·OTT
- 영제: Sleep
- 장르: 미스터리
- 감독: 유재선
- 개봉: 2023년 9월 6일
- 평점: IMDb 6.6/10, Rotten Tomatoes 95%, Metacritic 80%, Naver 7.83
- 러닝타임: 1시간 34분
- OTT: TVING, NETFLIX, coupang play, wavve, WATCHA, U+모바일tv, APPLE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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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에 대한 궁금증은?
잠 등장인물

수진 (정유미)
연극배우의 아내이자 곧 아이를 맞이할 임산부. 평범한 일상을 지키려 애쓰지만, 남편의 수상한 밤의 모습에 조금씩 잠식되어 간다. 이성으로 버티려 하나, 불안은 결국 경계선을 무너뜨린다.
현수 (이선균)
무대 위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는 연극배우. 그러나 잠이 들면, 진짜로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다. 렘수면 행동장애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지만, 그의 몸을 움직이는 힘이 과연 그것뿐일까.
민정 (김국희)
아랫집에 사는 여성. 층간소음 문제로 얽히면서, 수진의 불안 속에 점차 검은 그림자처럼 스며든다. 그녀의 존재는 단순한 이웃인가, 아니면 무언가를 불러오는 매개인가.
의사 (윤경호)
수면클리닉의 전문의. 차가운 기계와 데이터로 현수의 증상을 재단하지만, 그의 설명은 늘 어딘가 닿지 못한 채 공중에서 흩어진다. 과학은 여전히 문 앞에서 머뭇거린다.
수진 모 (이경진)
걱정이 깊어 무속신앙에 기댄 어머니. 의학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틈새를 믿음으로 덮으려 하지만, 그 믿음이 끝내 빛이 될지 그림자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해궁 할매 (김금순)
이름난 무당. 현수의 몸에 ‘남자 귀신’이 붙어 있다고 말하며, 사건을 의학이 아닌 다른 길로 이끈다. 그녀의 말은 단호했으나, 진실인지 아니면 또 다른 미혹인지—그건 여전히 열린 질문으로 남는다.
잠 줄거리

프롤로그
한밤중이었다.
수진은 몸을 뒤척이다가 눈을 떴다. 천장은 어둡고, 벽시계의 초침만이 공기를 가르며 작은 금속성 울림을 퍼뜨리고 있었다.
눈을 돌리자,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있는 남편 현수가 보였다. 빛도 그림자도 아닌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현수 씨…?”
조심스러운 속삭임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남편은 미세하게 몸을 떨더니, 마치 혼잣말처럼 낮게 읊조렸다.
“…누가 들어왔어.”
수진은 그것을 단순한 잠꼬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거실 쪽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쿵’ 소리가 울렸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조여 들었다.
남편을 흔들어 깨워보려 했지만, 그는 여전히 깊은 잠에 잠긴 듯 미동도 없었다.
숨을 고르며 수진은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공기가 그녀의 피부를 스쳤다. 다용도실 문은 바람에 흔들리며 삐걱거리고 있었다.
안도와 함께 다시 방으로 돌아왔지만,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 서늘한 기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어둡게 예고하는 신호 같았다.
제1장
수진은 아이를 뱃속에 품은 채 평온을 원했다. 남편 현수는 다정했고, 그의 곁에서라면 안전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믿음은 밤마다 흔들렸다.
현수는 잠든 사이 얼굴을 심하게 긁어 상처를 남기거나, 무의식적으로 일어나 날것의 음식을 입에 넣곤 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아무 기억도 없었다.
수진은 불길한 예감을 애써 부정했지만, 부엌 바닥에 남은 핏자국을 보게 된 날, 그 믿음은 깨져버렸다.
결국 두 사람은 수면 클리닉을 찾았다.
의사는 차분하게 ‘램수면 행동장애’라고 진단했다. 흔한 증상이며, 약물과 생활 습관만으로 충분히 나아질 수 있다고 했다.
부부는 위험한 물건들을 치우고, 식습관을 고쳤다. 약의 효과를 믿으며 안도한 듯 잠자리에 든 그날 밤, 수진은 잠시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침, 부엌은 엉망이었다. 무엇보다 반려견 후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수진은 불안한 가슴으로 집안을 뒤졌다.
그리고 냉동실을 열었을 때, 목구멍을 찢고 나오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오랫동안 누르고 있던 두려움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 같았다.
제2장
시간은 흘러, 딸이 태어났다.
현수는 아빠가 된 기쁨에 웃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는 치료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분가하자고 말했다.
그러나 수진은 거부했다. 힘든 일이라도 함께 버티고 싶었다. 대신 그녀는 문종을 달고, 침낭을 준비해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 하지만 반려견의 끔찍한 최후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날 밤, 수진은 결국 딸을 품에 안은 채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문을 잠그고 욕조에 몸을 기댄 채, 간신히 눈을 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방 쪽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화장실 문고리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현수 씨…?”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대답은 없었다.
곧이어 문이 쾅쾅 두드려졌다. 수진은 아이를 안은 채 몸을 움츠렸다. 긴장으로 귀가 울릴 지경이었다.
잠시 뒤, 정적이 흘렀다. 문을 살짝 열어 밖을 내다본 수진은 믿기 힘든 광경을 보았다. 남편이 아기의 요람에 오줌을 누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밤을 새운 수진의 눈은 충혈로 붉게 물들었다. 옆에서 잠든 현수를 노려보며, 그녀는 더 이상 평온을 기대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현수의 증상은 치료에도 호전되지 않았다. 불안은 점점 커졌고, 결국 친정어머니가 찾아왔다. 그녀는 “용하다”는 무당을 데리고 수진의 집을 방문했다.
방울 소리가 울리며, 무당 해궁 할매는 집안을 둘러보다 현수 앞에 섰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잠시 노려보던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붙은 게 있다. 귀신이다. 이름을 알아야 천도를 할 수 있어.”
그 말은 수진의 내면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녀는 과거 연인들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확인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그러다 불현듯, 아래층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한때 반려견 문제로 다툰 적은 있었지만, 늘 은근한 호의를 보였던 인물.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더니, 얼마 뒤 그의 딸 민정과 손자가 이사 왔다.
수진이 민정에게 조심스레 물었을 때,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아버지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 순간, 수진의 머릿속에서는 모든 퍼즐이 맞아떨어졌다.
남편의 몽유병이 시작된 시점, 반려견의 죽음, 아래층 할아버지의 부재.
수진은 무당의 말을 맹신하기 시작했고, 불안은 점점 형체를 갖춰갔다. 그것은 이제 단순한 병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녀는 믿게 되었다.
잠 결말

제3장
현수의 몽유병은 기적처럼 가라앉았다. 새로 처방받은 약 덕인지, 아니면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가벼워진 탓인지, 며칠째 잠든 밤은 잔잔했다. 의사는 ‘완치’라는 표현까지 사용했고, 차트에 정리된 기록은 깔끔히 끝을 맺고 있었다.
그러나 안도해야 할 순간, 수진은 다른 길로 들어섰다. 불안이 쌓이고 쌓이다 끝내 무너져 내린 뒤,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퇴원일. 현수는 장모와 함께 병원을 찾았으나, 병실은 이미 비어 있었다. 담당 간호사는 “조금 전 퇴원하셨다”는 짧은 말만 남겼다.
휴대전화는 하루 종일 닿지 않았다. 현수는 불길함을 억누르며, 딸을 장모에게 맡긴 뒤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몸을 조여왔다. 거실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구석구석에는 낯선 종이조각들이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빽빽히 붙여진 부적들이었다. 노란색 종이에 검붉은 글자가 촛불빛을 받아 꿈틀대는 듯 보였다.
방 안에는 수진이 서 있었다. 창백한 얼굴, 손끝에는 촛농이 묻어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깊은 밤처럼 고요했지만, 그 안에 서린 것은 안도도 평화도 아니었다.
“완치 판정 받았어.” 현수가 애써 차분히 말했다. “이제 끝났다고. 약 덕분이야.”
그러나 수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증상이 줄어든 건 약 때문이 아니야. 당신 등에 새겨진 글귀 때문이야. 할매가 몰래 써 준 거. 그게 있어서 버틴 거라고.”
현수의 눈이 흔들렸다. 자신 몰래 행해진 기이한 의식, 알 수 없는 부적들. 분노와 혼란이 뒤섞여 목구멍이 메였다. 이 집을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수진의 시선이 그를 붙잡았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그녀는 낮게 속삭였다. “죽은 지 백일이 지나면, 귀신은 이승에 발목을 잡히고 말아. 오늘을 넘기면, 영영 떠나지 못해. 그러니까… 믿어 줘.”
그 순간, 현수는 방 한가운데 엎드려 있는 또 다른 형체를 발견했다. 눈과 입이 천으로 막힌 민정이었다. 수진은 이미 아래층 여자를 끌어올려 묶어 두고 있었다. 그녀의 목숨을 미끼로, 남편의 몸에 붙어 있다는 할아버지의 혼을 협박하고 있었다.
“내 말 잘 들어요…” 수진의 목소리는 떨리면서도 단단했다.
어두운 공기 속에서 현수의 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의 입술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알았다고, 이제 가면 되잖아.”
순간, 수진의 눈앞에서 희미한 기류가 일렁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빛이 현수의 몸을 스쳐 지나가듯, 순간적으로 방 안이 환해졌다가 곧 어둠에 삼켜졌다.
수진은 두 손을 모은 채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것이 남편의 연기인지, 실제로 영혼이 빠져나간 것인지, 분간할 길은 없었다.
촛불이 꺼졌다. 방 안은 다시 정적에 잠겼다.
잠 해석 포인트 5가지
유령이나 괴물이 등장하지 않아도, 공포는 얼마든지 밀려올 수 있다. 유재선 감독의 〈잠〉은 초자연적 현상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정작 카메라가 겨냥하는 것은 가정 내부의 긴장, 그리고 억눌린 무의식이다. 이 영화에서 ‘수면장애’는 단순한 의학적 증상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공간을 잠식하는 균열의 은유로 작동한다.
무의식의 얼굴 ― 낮의 현수, 밤의 현수
주인공 현수는 낮에는 평범하고 온화한 남편이지만, 잠들면 낯선 존재로 변한다. 아내 수진이 목격하는 그 모습은 점차 기이하고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이 이중성은 현대인의 ‘두 얼굴’을 드러낸다. 수면은 가장 무방비한 순간, 즉 본성이 노출되는 시간이다. 영화가 제시하는 공포는 타인보다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실존적 불안에서 비롯된다.
불면의 모성 ― 감시자의 눈
출산 후 수진은 더 이상 깊이 잠들지 못한다. 불면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아기를 지키려는 강박적 감시의 증상으로 확장된다. 남편의 무의식적 폭력이 아이에게 향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곧 가정을 지탱해야 한다는 과잉 의무감으로 이어진다. 수진은 점차 남편을 감시하고, 봉인하려 든다. 모성과 공포가 겹쳐지면서, 사랑은 불안의 형식으로 전환된다.
남편의 ‘잠’ ― 한국적 무의식의 초상
현수는 잠든 동안 폭력적이 되지만, 정작 본인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나는 아니야”라고 말하며 책임을 회피한다. 이 부재하는 자각은 단순한 개인적 결함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남성성이 폭력과 책임을 어떻게 합리화하는지에 대한 집단적 무의식의 은유처럼 읽힌다. 정신과 진단서, 종교적 의식은 모두 문제를 외면하거나 봉합하려는 장치일 뿐이다. 영화는 제도가 내밀한 균열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드러낸다.
현실의 무게 ― 초자연보다 무서운 사랑의 균열
〈잠〉의 결말은 열린 채로 남는다. 현수의 상태는 악령의 소행일 수도, 정신질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은 설명이 아니다. 더 이상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영화가 제시하는 가장 큰 공포다. 초자연적 존재보다 무서운 것은, 매일 곁에 있는 사람이 더 이상 나의 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다.
상징적 장치들
- 수면장애: 무의식의 분열, 제어 불가능한 자기 자신
- 밤의 현수: 억눌린 폭력성, 무책임의 표상
- 수진의 불면: 육아 불안, 과잉 감시자의 시선
- 아기: 순수이자 위협받는 미래
- 종교 의식·진단서: 현실을 비현실로 봉합하려는 제도의 무력함
- 아파트: 사회적 고립, 가족의 폐쇄적 세계
결론 ― 우리는 모두 잠든 사회에 살고 있다
〈잠〉은 귀신보다 더 무서운 현실을 응시한다. 잠은 곧 사회적 무의식이며, 우리가 일상 속에서 애써 눌러온 불안의 증거다. 영화는 장르적 긴장감으로 포장되었지만, 실제로는 가족, 책임, 정신건강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관객이 극장을 나설 때 남는 질문은 이것일 것이다.
내 곁의 사람은 지금 정말 깨어 있는가,
아니면 잠든 얼굴 뒤에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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