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 인종차별 논란 사건 프로필
로제 인종차별 논란 사건 프로필

- 사건명: 엘르 UK 로제 인종차별 논란
- 발생 시점:
- 발생 장소: 영국 패션 매거진 엘르 UK 공식 SNS
- 관련 인물: 로제(BLACKPINK), 찰리 XCX, 헤일리 비버, 조 크라비츠
- 사건 경과:
- 엘르 UK가 로제를 제외한 단체 사진을 게시
- 찰리 XCX가 로제만 음영 처리된 사진을 SNS에 업로드
- 헤일리 비버가 해당 게시물을 공유하며 논란 확산
- 비난 여론이 커지자 엘르 UK는 로제 단독 사진 게재
- “사진 크기 조정 과정의 실수”라며 공식 사과문 발표
- 논란의 핵심: 아시아인 아티스트만 배제된 점이 인종차별 의혹으로 이어짐
- 파급 효과:
- 국제 언론 보도 및 SNS 해시태그 운동 확산
- 패션계 내 아시아인 차별 문제를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기록
- 의의:
- K-팝 스타의 글로벌 영향력과 팬덤의 목소리가 매체 대응을 이끌어낸 사건
- 패션·미디어 업계의 다양성과 포용성 문제를 재조명
- 관련 글: 인종차별 정의 및 사례
한 장의 사진이 지워낸 것은 단지 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경계, 그리고 그 경계 너머를 상상하지 못하는 시선이었다.
로제 인종차별 논란의 발단과 전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다. 그것은 콘크리트도, 철조망도 아니다. 때로는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건네지는 시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그 벽의 이름은 오래도록 인류를 따라다닌 단어, 인종차별이다.
2025년 9월, 파리에서 열린 생로랑 2026 S/S 패션쇼. 전 세계 패션계의 눈이 집중된 그 무대에서, 한 장의 사진이 폭풍의 중심이 되었다. 영국 패션 매거진 엘르 UK는 행사 단체 사진을 공식 SNS에 게시했는데, 그 사진에는 배우 조 크라비츠, 모델 헤일리 비버, 가수 찰리 XCX만이 서 있었다. 그들과 함께 나란히 서 있던 인물, 블랙핑크 멤버 로제의 모습만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누리꾼들은 곧장 목소리를 높였다. “왜 로제만 잘렸는가?” 단순한 사진 편집 이상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글로벌 앰버서더 자격으로 공식 초청받은 아시아인 아티스트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는 의심은 삽시간에 인종차별 논란으로 번졌다. 여기에 찰리 XCX가 로제의 모습 전체를 음영 처리한 사진을 SNS에 올리며 불에 기름을 부었다. 그녀는 끝내 별다른 해명 없이 게시물을 삭제했고, 엘르 UK는 “사진 크기 조정 과정에서 생긴 실수”라며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대중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실수였을 뿐”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이 단지 사진 편집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오래전부터 반복해온 어떤 패턴 — ‘중심’과 ‘주변’을 나누는 시선, 그 시선이 낳는 서열의 질서를 다시금 드러냈기 때문이다.
단순한 ‘실수’인가, 패션계에 뿌리내린 구조적 문제인가
엘르 UK는 실수라 했고, 찰리 XCX는 침묵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던진 질문은 훨씬 더 크다. 과연 이것은 한두 사람의 경솔한 선택에서 비롯된 일인가, 아니면 우리가 살아가는 구조 속에서 되풀이되는 일상의 풍경인가?
패션 산업은 오랫동안 ‘서구 중심’의 시각을 당연시해왔다. 런웨이의 모델들은 대체로 백인이었고, 화보의 주연은 언제나 서구인이었다. 아시아인은 종종 ‘이국적인 장식물’로 등장하거나, 글로벌 무대에서 배경처럼 다뤄지곤 했다. 로제가 누구인가. 한국인 최초로 생로랑의 글로벌 앰버서더가 되었고, 입생로랑 뷰티의 얼굴이 되었으며, 세계적인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의 협업곡으로 빌보드 메인 차트에서 36주 연속 머무른 아티스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한 장의 단체 사진에서 ‘잘라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 단순한 실수일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어떤 무의식이 드러난 결과일까?
로제 사건이 드러낸 인종차별의 얼굴 – 폭력이 아닌 공기처럼 스며드는 차별
인종차별은 흔히 욕설과 폭력, 대놓고 차별하는 행위로만 떠올리기 쉽지만, 실상은 훨씬 더 교묘하다. 그것은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다.
어떤 이름은 이력서에서 걸러지고, 어떤 얼굴은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되지 않는다.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피부색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고, 같은 자리에 서 있어도 어떤 이는 ‘대표’로, 어떤 이는 ‘이방인’으로 인식된다.
로제가 사라진 사진도 그런 맥락 속에 있다. “크기 조정”이라는 말은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왜 하필 그 조정이 아시아인 여성에게 향했는가? 왜 그 순간, 그녀가 없어도 되는 사람으로 간주되었는가? 그것은 편집자의 선택이라기보다,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무의식의 결과다.
로제 인종차별 이후, ‘다름’을 보는 우리의 시선
인종차별은 “다름은 곧 열등함”이라는 오래된 신념에서 자란다. 그러나 다름은 결코 우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다양성의 다른 이름이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 인간은 모두 다르기에 정치적 존재이며, 서로 다른 존재이기에 이해하고 대화하려는 노력을 멈출 수 없다.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논란이지만,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그보다 훨씬 크고 깊다. 이 사건은 세계 패션 산업 안에서, 나아가 글로벌 문화 전반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비춘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서구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 역시 ‘백인이 아니면 흑인’이라는 이분법적 인식, 동남아 이주민을 향한 차별적 언사, 피부색이나 외모에 대한 무심한 농담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변화는 거대한 혁명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언어를 돌아보는 작은 성찰에서, 타인의 차이를 낯설어하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에서, 그리고 ‘실수’라는 말로 덮이지 않는 구조를 비판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한 장의 사진이 보여준 것은, 단지 한 사람의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 세계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경계선, 그리고 그 경계선을 무심히 넘지 못하는 우리의 시선이었다. 하지만 기억하자. 벽은 영원하지 않다. 우리가 그것을 문제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그것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로제가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누락된 인물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넘어야 할 경계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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