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서문은 단지 한 시대의 서두가 아니다. 그것은 세종의 시선과 사유가 응축된 한 편의 선언문이다. 이제 원문과 언해본,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뜻을 차례로 살펴보자.
훈민정음 서문 해설
훈민정음 서문 해설: 해례본·언해본·원문·발음·풀이까지

- 서문 원문 (한문) – 『훈민정음 해례본』 예의편: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 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予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 便於日用耳 - 중세국어 언해본 –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
나랏말ᄊᆞ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홇 배 이셔도 마참내 제 뜻을 시러 펴디 몯할 놈이 하니라
내 이ᄅᆞᆯ 윙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여덟 자를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 니겨 날로 쓰메 뼌안킈 하고져 할 따름이니라 - 현대어 풀이:
우리나라 말은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해도 끝내 뜻을 펼 수 없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안타깝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어
누구나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 발음 재현 예시: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 [narat͈sami t͈yŋɡyɡe samat̚ti aniɦals͈e] (학술적 복원) - 창제자: 세종대왕
- 협력자: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최항, 박팽년, 강희안, 이개, 이선로
- 창제:
- 반포:
- 반포 문헌: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제70호)
- 의의:
- 백성을 위한 문자 창제라는 애민 정신의 결정체
- 한자 중심의 지식 체계에서 벗어난 언어 자주성 실현
- 세계 유일의 창제 원리와 해설서가 함께 전해지는 문자
- 세계적 인정:
-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 관련 콘텐츠:
“나랏말싸미”로 시작된 문자 혁명 – 세종의 뜻과 훈민정음 서문의 울림
역사는 종종 몇 줄의 문장으로 방향을 바꾼다. 1446년, 세종이 반포한 《훈민정음》 서문 첫 문장도 그러했다.
해석: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 얼마나 조용하고 단호한 선언인가. 한 나라의 왕이 스스로의 언어를 “중국과 다르다”고 말한 것이다. 단순한 사실 진술 같지만, 이 문장은 조선이 ‘중화의 질서’에서 언어적 독립을 향해 나아간 출발점이었다.
훈민정음 창제의 배경에는 단지 글자를 만들려는 기술적 욕망이 있지 않았다. 그것은 세종이 바라본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나라의 법령과 제도, 유교 경전과 과거 시험은 모두 한자로 기록되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은 곧 권력에 접근하는 길이었고,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양반 지배층만이 쥐고 있었다. 그 아래 계층의 백성은 자신의 말로 편지를 쓰지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소문 한 장 쓰지도 못했다.
세종은 이 불평등을 고요히,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았다. 《훈민정음》 서문은 그 시선에서 비롯된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백성이 뜻을 펴지 못한다는 것 — 그것은 곧 말과 글의 권리가 박탈된다는 뜻이었다. 세종은 이를 “어리석음” 때문이라 단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자 체계 자체가 너무 어렵고 낯설었기 때문이라 여겼다. 그렇기에 그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마다 쉽게 익혀”라는 말이다. 문자란 오랫동안 소수만이 독점하는 지식의 장치였다. 그러나 세종은 그 장치를 백성에게 돌려주려 했다. 이 선언은 단지 ‘글자 창제’를 넘어, 언어 권력을 재편하는 정치적 행위였다.
그리고 그 작업은 세종 혼자 이룬 일이 아니었다. 집현전이라는 젊은 학문 기관이 있었다.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같은 학자들이 세종 곁에서 발음 체계를 분석하고 제자 원리를 정리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창제”가 아닌 “보좌”를 했을 뿐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서 정인지는 “임금께서 친히 창제하셨다(親制)”고 기록한다. 문자 하나하나의 모양과 소리를 고안한 주체는 세종 그 자신이었다는 뜻이다.
서문은 짧지만, 그 안에는 훈민정음의 모든 정신이 담겨 있다. 자국어에 대한 자각, 백성을 향한 연민, 그리고 지식의 평등에 대한 믿음.
“나랏말싸미…”로 시작한 이 문장은 단순한 서문이 아니라, 언어 민주주의의 선언문이었다. 15세기의 왕이 ‘말을 쓸 수 있는 권리’를 백성에게 돌려준 순간, 조선의 언어는 더 이상 지배의 도구가 아니라 삶의 언어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그 문장을 읽으면 이상할 만큼 따뜻하다. 말과 글을 읽고 쓰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세종의 서문은 한 가지를 조용히 일깨운다. 언어란 누군가의 특권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라는 것을. 그리고 훈민정음은 바로 그 권리를 위한, 조선의 가장 위대한 실험이었다.
더 보기
History & Society
Artist Profiles
Philosophy & Thought
Literature & Classics
Designer Toys
Cultural Ev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