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answer
한 지도자가 사라질 때, 체제는 잠시 숨을 고른다. 그것은 애도의 시간이 아니라, 방향을 잃은 기계의 짧은 정적이다.
만약 김정은이 사망한다면—그 한 문장은 북한이라는 이름의 체제를 다시 쓰는 서문이 될 것이다.
김씨 왕조, 피로 쌓은 신화의 끝자락
김정은은 1984년 1월 8일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삶에서 ‘정확한’ 것은 거의 없다. 출생의 세부, 후계자 선정의 과정, 권력 승계의 내부 합의—모두 불투명한 안개 속에서 진행됐다.
그는 한 개인이라기보다, 세습과 충성, 공포로 구성된 거대한 서사의 장치였다.
김일성으로부터 이어진 혁명 혈통의 신화는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에게 이르러 마침내 하나의 종교적 구조물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 신화의 내벽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권력의 공백이 아니다. 오히려 ‘누가 그 기계를 다시 돌릴 것인가’라는, 냉정한 실무의 문제다.
세 가지 시나리오 — 김주애·김여정, 집단, 군부의 그림자
김정은 이후의 북한은 세 가지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첫째, 혈통의 연속이다.
그의 딸 김주애는 최근 공개석상에서의 등장과 상징적 연출을 통해 잠재적 후계자로 거론된다.
북한의 내부 논리로 볼 때, 혈통 계승은 ‘혁명 정통성’의 유일한 언어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나이와 성별, 그리고 경험의 부재다.
이 체제는 어린 지도자를 보호하기 위해 ‘대리 권력’을 앞세울 것이고, 그 과정에서 김여정이나 당·군 핵심 인사들이 권력의 윤곽을 재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즉, 후계자는 상징으로 등장하고, 권력은 대리로 작동한다.
둘째, 집단지도체제의 부상이다.
후계 결정이 지연되거나 내부 갈등이 발생할 경우, 노동당과 군이 중심이 된 합의형 권력 구조로 이동할 수 있다.
이는 겉으로는 집단의 이름을 빌리지만, 실제로는 군부의 실질적 장악으로 귀결된다.
핵·미사일 체계의 통제권 역시 ‘개인’이 아닌 ‘집단’의 명의로 관리되며, 북한의 외교 언어는 “비(非)인격적 체제의 언어”로 재편될 것이다.
셋째, 군부 주도의 과도체제다.
김정은의 갑작스러운 사망이나 내부 반발이 격화될 경우, 체제는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군이 주도권을 잡는 임시정부 형태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그 시기 북한은 더욱 닫히고, 정보와 통신은 차단되며, 외부 세계와의 모든 연결선이 잠시 끊길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폐쇄의 순간이야말로 내부 균열이 처음 감지되는 시간일 수도 있다.
핵의 유산과 외교의 경계
김정은 이후의 북한을 이해하는 열쇠는 핵이다.
핵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체제의 존재 이유이자, 권력의 알리바이였다.
지도자의 부재는 곧 통제권의 공백을 의미하며, 이 공백을 둘러싸고 주변국의 움직임은 신속하고 계산적일 것이다.
중국은 국경 안정과 난민 유입을 경계하며 ‘조정자’로 나설 것이고,
미국과 한국은 연합 방위태세와 핵 억제 전략을 재조정할 것이다.
한반도는 잠시 숨을 고르겠지만, 그 숨은 결코 평화의 리듬이 아니다.
그것은 위기의 재조정이다.
신화의 무게를 짊어진 북한 주민들
지도자의 죽음은 언제나 주민들의 일상에서 먼저 감지된다.
애도 집회, 검열 강화, 퍼레이드—이 모든 것은 통제의 언어로 쓰인 ‘질서의 퍼포먼스’다.
그러나 그 퍼포먼스의 틈새에서, 사람들은 미세한 균열을 느낀다.
‘영원한 혁명’이라 불린 그 신화가 사실은 인간의 공포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그 공포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은은 단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시간의 구조 그 자체였다.
그가 사라진다는 것은, 통제된 시간의 균열을 의미한다.
그 균열이야말로 새로운 세대가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작은 창이 될 것이다.
결론: 붕괴가 아닌, 지속의 기술
많은 외부 분석가들은 김정은 사망 이후 북한이 붕괴할 가능성을 말한다.
그러나 이 체제는 이미 ‘붕괴를 통제하는 방법’을 배워온 집단이다.
그들은 무너지는 법보다, 버티는 법을 더 오래 연습해왔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군부 중심의 과도체제가,
중기적으로는 김주애 혹은 김여정 중심의 ‘혈통 복원’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복원은 개혁이 아니라 지속의 기술일 것이다.
결국 북한의 운명은 ‘김정은 이후’가 아니라 ‘김정은의 유산’에 달려 있다.
그 유산은 두려움, 고립, 핵, 그리고 시간을 통제하는 언어다.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을 것은 국가가 아니라 침묵의 메커니즘이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인간은 언제나 균열을 만든다.
그 미세한 균열이야말로—
한 체제가 끝나고,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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