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는 건 늘 조금 늦은 일처럼 느껴진다.
말로는 쉽게 꺼낼 수 없던 문장들이, 종이 위에서는 왜 이렇게 조심스러워지는지. 아마도 이 편지가 단순한 안부가 아니라, 그동안 미뤄두었던 나 자신의 고백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의 나는 엄마를 하나의 풍경처럼 받아들였다.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사라질 리 없다고 믿었다. 아침마다 들리던 냄비 소리, 현관에서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 손짓, 내가 잠든 뒤에도 불이 꺼지지 않던 부엌. 그 모든 장면은 특별하지 않아서, 기억해야 할 이유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그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했다.
나는 자라면서 점점 말을 아꼈다. 엄마 앞에서는 더 그랬다. 괜히 걱정을 늘릴까 봐, 설명이 길어질까 봐, 혹은 내 마음을 들키는 일이 부끄러워서. 대신 “괜찮아”라는 말로 많은 대화를 끝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은 나를 보호하는 동시에 엄마를 멀어지게 하는 문장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등이 예전보다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를 때 숨을 고르는 시간이 길어졌고, 전화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는 조금 낮아졌다. 그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엄마도 시간을 건너오는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의 성장을 지켜보느라 자신의 변화를 뒤로 미뤄온 사람이라는 것을.
이 편지를 쓰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서툴다. 감사하다는 말이 왜 이렇게 입에 붙지 않는지, 사랑한다는 표현이 왜 이토록 낯선지. 다만 분명한 건, 내가 살아오며 당연하게 여겼던 많은 순간들이 사실은 엄마의 선택과 인내 위에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말없이 참아낸 하루들, 설명하지 않고 넘긴 감정들, 그리고 끝내 나에게 남겨준 시간.
엄마, 나는 이제서야 알 것 같아요.
당신이 나를 키운 것이 아니라, 나를 기다려주었다는 사실을.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늘 같은 자리에서 지켜보았다는 것을. 그 기다림이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지도.
이 편지는 어쩌면 완성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몇 번을 고쳐 써도 빠지는 문장이 있고, 끝내 쓰지 못하는 말들이 남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중요한 건 이 편지가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제야 엄마를 한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사실일 테니까.
오늘은 전화를 걸어볼 생각이다. 별다른 용건은 없다. 날씨 이야기를 하고, 밥은 먹었는지 묻고, 예전과 다르지 않은 대화를 나눌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평범한 대화 속에, 이 편지의 문장들이 조용히 숨어 있을 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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